[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 낙서화가 '바스키아' ,그림을 통해서 그려낸 '스포츠 영웅들'
기사 등록 2014-03-18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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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거리의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의 하나는 바로'영웅'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스타들은 바스키아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영웅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전설적인 흑인 스포츠 스타들입니다.
예컨대, 복싱 역사상 전 체급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복서의 하나로 평가되는 슈거 레이로빈슨이나 알리 이전까기 가장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의 하나였던 조 루이스, 그리고 온갖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우뚝 선 재키 로빈슨 같은 역사적인 스포츠 선수들은 곧 바스키아 작품의 주제나 다름 없습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등장하는 흑인 스포츠 스타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을 벽을 뛰어 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념비적인 존재들입니다. 바스키아에게 그들은 '영웅' 그 자체입니다.
바스키아는 이들 흑인 스포츠 영웅들에게 '왕관'을 씌워줌으로써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흑인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분야인 미술을 통해 바스키아가 흑인 스포츠 스타들을 다루고 있는 점은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슈거 레이 로빈슨은 1940~50년대 미들급 최강의 복서로 유명했습니다. 20여년에 이르는 선수 생활 동안 그는 웰터급에 이어 미들급 챔피언을 무려 다섯차례나 차지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이 체급 최강자로 군림했었습니다. 최고 전성기인 11년 동안에는 무려 127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연승 가도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유연하고 우아한 몸놀림에 더해진 스피디하고 파워풀한 펀치력은 슈거 레이 로빈슨만의 전매특허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슈거 레이 레너드가 그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슈거 레이'라는 이름을 따온 일화는 유명합니다.
링 위에서 슈거 레이 로빈슨은 최강자였지만, 링 밖에서도 그는 화려한 생활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폭음을 즐긴데다 최고급 의상에 늘상 다양한 인종의 여인들을 수행원처럼데리고 다녔을 만큼 낭비와 사치도 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슈거 레이 로빈슨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은 바스키아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그도 유명해진 훗날 절제력을 상실한 채 슈거 레이와 같은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백인 주류 사회의 억압에서 비롯된 우울함과 좌절감이 이렇듯 슈거 레이를 거만하고 사치스러운 습관에 젖게 한 원인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일곱살 이후로 늘상스타를 꿈꾸었다는 바스키아에게 슈거 레이는 절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링 밖에서의슈거 레이의 사치스러운 사생활조차 바스키아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듯 싶습니다.
바스키아는 검은 색 바탕 위에 왕관을 쓴 슈거 레이의 형상을 두개골 모양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여 흑인 영웅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라는 이름 아래 새겨진 표식 같은 왕관은 절대 영웅을 상징하는 기호 같다는 느낌입니다.
'갈색 폭격기'로 유명한 조 루이스는 무하마드 알리 이전까지 가장 유명한 헤비급 챔피언의 하나였습니다. 1938년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독일 선수인 막스 슈멜링을 이기면서 유명해졌는데, 무려 12년간이나 헤비급 타이틀을 보유했었던 전설적인 복서입니다.
그런데, 슈거 레이 로빈슨이나 재키 로빈슨 같은 작품들에서 그들 흑인 영웅들에게 왕관을 씌워 상징적인 의미에 중점을 둔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선 링 안의 복싱 선수의모습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코너에 앉아 있는 조 루이스 주변에 트레이너와 코치, 혹은 매니저 등 복싱 관계자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함께 그려넣은게 이채롭습니다.
경제적인 탐욕 때문에 선수를 망치게 하는 복싱 관계자들과 매니저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탓에 이 그림은 흑인 스타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백인 흥행사들에 대한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되고 있습니다.
슈거 레이 로빈슨과 유사한 패턴으로 그려진 작품이 바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바스키아가 슈거 레이 만큼이나 자신의 우상으로 숭배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바탕 색만 다를 뿐 슈거 레이 로빈슨과 흡사한 구도를 띄고 있습니다. 야구 모자를 쓴 재키 로빈슨의 오른쪽 위에 그려진 왕관에서 그가 미국 야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구계의 링컨으로 불리는 브룩클린 다저스의 브렌치 리키 단장에 의해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로 발탁되었지만, 당시 엄존했던 인종차별로 인해 그의 선수 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를 발탁하면서 리키 단장은 어떠한 차별과 모욕도 이겨낼 것을 주문했고, 선수 생활 내내 로빈슨은 단장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로빈슨은 팀에선 왕따였고, 다른 팀에선 그를 퇴출시키기 위한 파업까지 모의되었습니다. 심판도 부당한 판정을 내리기 일쑤였고, 관중들은 그가 그라운드에 나설때마다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관중석에선 늘 로빈슨 때문에 폭동이 일어날 듯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심지어 어떤 팀 감독은 고의적으로 그에게 부상을입히라는 지시까지 내렸습니다. 이런 온갖 고난과 역경를 이겨내고 마침내 로빈슨은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서며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최초의 흑인 선수이면서 최초의 흑인 올스타, 최초의 흑인 MVP, 최초의 흑인 명예의전당 헌액자 역시 재키 로빈슨이 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선수이자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스키아가 로빈슨에게 왕관을 씌워주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바스키아가 로빈슨에게 왕관을 씌워준지 15년만인 1997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로빈슨 데뷔 50주년을 맞아 그의 등번호 42번을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복싱이나 농구, 야구와 같은 스포츠 분야와 함께 흑인이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재즈나 블루스 같은 음악 분야입니다. 특히 재즈는 본래 뉴올리안즈 흑인들의 음악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흑인들처럼 바스키아가 재즈에 심취한 것은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재즈는 스포츠와 더불어 생전에 바스키아가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던 분야인 만큼 흑인 스포츠 영웅들과 함께 찰리 파커나 마일즈 데이비스같은 재즈의 거장들은 그의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스키아는 뮤지션들과 각자의 파트를 기록한 단어 리스트만으로 구성된 '디스코그래피1', '디스코그래피2'를 통해 찰리 파커와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낡은 LP판의 뒷면을 보는 듯한 그의 디스코그래피 연작처럼 그의 작품에는 온전히 이름과 단어 리스트 만으로 구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바스키아는 그것을 '사실(facts)'이라 불렀는데, 그의 낙서화에서 문자는 상징적 기호 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습니다.
찰리 파커에 대한 바스키아의 경외감은 '찰스 최고'에 한층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테너 색소폰의 황제이자 비밥 재즈의 창시자이며 모던 재즈의 선구자였던 찰리 파커는 바스키아에겐 음악적 영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찰리 파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 같은 작품이 바로 'Charles the First', 즉 '찰리 최고'라는 작품입니다. 얼핏 두서 없는 낙서 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음악가의 삶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삼면화에는 왕관이 여러군데 그려져 있는데, 특히 맨 왼쪽에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 신과 연결시켜 찰리 파커에게 빛나는 왕관을 씌워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슈퍼맨의 상징인 'S'자 심벌을 덧붙여 단순히 뮤지션을 넘어서 히어로의 의미까지 부각시켜 놓았습니다.
가운데 부분 상단에는 파커의 딸 이름인 프리와 그녀의 생몰 연대까지 적혀있습니다. 오른쪽 부분의 '체로키(Cherokee)'는 파커가 작곡한 유명한 재즈 스탠
더드입니다.
찰리 파커는 재즈 특유의 즉흥성과 테크닉을 확장시켜 비밥 스타일을 창조해낸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지만, 아쉽게도 그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는 평생 마약과 약물에 빠져 살았고, 숱한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나중엔 정신분열까지 일으켜 몇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찰리 파커의 삶은 미술가로서 성공했지만 문화계의 위선과 방탕 속에서 번민하고 방황하다 결국 마약 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바스키아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술적 천재성과 방황하는 삶 그리고 비극적인 종말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파커와 바스키아 삶의 공통된 부분입니다. 아마도 바스키아는 자신이 동경하던 우상들의 천재성 뿐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까지 동경했는지도 모릅니다.
"열일곱살 이후 나는 늘 스타를 꿈꿨다.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 같은 우상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들이 유명해진 방식에 낭만을 느꼈다." [장 미셸 바스키아]
박정은기자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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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거리의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의 하나는 바로'영웅'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스타들은 바스키아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영웅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전설적인 흑인 스포츠 스타들입니다.
예컨대, 복싱 역사상 전 체급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복서의 하나로 평가되는 슈거 레이로빈슨이나 알리 이전까기 가장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의 하나였던 조 루이스, 그리고 온갖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우뚝 선 재키 로빈슨 같은 역사적인 스포츠 선수들은 곧 바스키아 작품의 주제나 다름 없습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등장하는 흑인 스포츠 스타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을 벽을 뛰어 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념비적인 존재들입니다. 바스키아에게 그들은 '영웅' 그 자체입니다.
바스키아는 이들 흑인 스포츠 영웅들에게 '왕관'을 씌워줌으로써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흑인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분야인 미술을 통해 바스키아가 흑인 스포츠 스타들을 다루고 있는 점은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슈거 레이 로빈슨은 1940~50년대 미들급 최강의 복서로 유명했습니다. 20여년에 이르는 선수 생활 동안 그는 웰터급에 이어 미들급 챔피언을 무려 다섯차례나 차지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이 체급 최강자로 군림했었습니다. 최고 전성기인 11년 동안에는 무려 127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연승 가도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유연하고 우아한 몸놀림에 더해진 스피디하고 파워풀한 펀치력은 슈거 레이 로빈슨만의 전매특허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슈거 레이 레너드가 그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슈거 레이'라는 이름을 따온 일화는 유명합니다.
링 위에서 슈거 레이 로빈슨은 최강자였지만, 링 밖에서도 그는 화려한 생활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폭음을 즐긴데다 최고급 의상에 늘상 다양한 인종의 여인들을 수행원처럼데리고 다녔을 만큼 낭비와 사치도 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슈거 레이 로빈슨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은 바스키아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그도 유명해진 훗날 절제력을 상실한 채 슈거 레이와 같은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백인 주류 사회의 억압에서 비롯된 우울함과 좌절감이 이렇듯 슈거 레이를 거만하고 사치스러운 습관에 젖게 한 원인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일곱살 이후로 늘상스타를 꿈꾸었다는 바스키아에게 슈거 레이는 절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링 밖에서의슈거 레이의 사치스러운 사생활조차 바스키아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듯 싶습니다.
바스키아는 검은 색 바탕 위에 왕관을 쓴 슈거 레이의 형상을 두개골 모양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여 흑인 영웅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라는 이름 아래 새겨진 표식 같은 왕관은 절대 영웅을 상징하는 기호 같다는 느낌입니다.
'갈색 폭격기'로 유명한 조 루이스는 무하마드 알리 이전까지 가장 유명한 헤비급 챔피언의 하나였습니다. 1938년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독일 선수인 막스 슈멜링을 이기면서 유명해졌는데, 무려 12년간이나 헤비급 타이틀을 보유했었던 전설적인 복서입니다.
그런데, 슈거 레이 로빈슨이나 재키 로빈슨 같은 작품들에서 그들 흑인 영웅들에게 왕관을 씌워 상징적인 의미에 중점을 둔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선 링 안의 복싱 선수의모습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코너에 앉아 있는 조 루이스 주변에 트레이너와 코치, 혹은 매니저 등 복싱 관계자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함께 그려넣은게 이채롭습니다.
경제적인 탐욕 때문에 선수를 망치게 하는 복싱 관계자들과 매니저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탓에 이 그림은 흑인 스타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백인 흥행사들에 대한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되고 있습니다.
슈거 레이 로빈슨과 유사한 패턴으로 그려진 작품이 바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바스키아가 슈거 레이 만큼이나 자신의 우상으로 숭배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바탕 색만 다를 뿐 슈거 레이 로빈슨과 흡사한 구도를 띄고 있습니다. 야구 모자를 쓴 재키 로빈슨의 오른쪽 위에 그려진 왕관에서 그가 미국 야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구계의 링컨으로 불리는 브룩클린 다저스의 브렌치 리키 단장에 의해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로 발탁되었지만, 당시 엄존했던 인종차별로 인해 그의 선수 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를 발탁하면서 리키 단장은 어떠한 차별과 모욕도 이겨낼 것을 주문했고, 선수 생활 내내 로빈슨은 단장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로빈슨은 팀에선 왕따였고, 다른 팀에선 그를 퇴출시키기 위한 파업까지 모의되었습니다. 심판도 부당한 판정을 내리기 일쑤였고, 관중들은 그가 그라운드에 나설때마다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관중석에선 늘 로빈슨 때문에 폭동이 일어날 듯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심지어 어떤 팀 감독은 고의적으로 그에게 부상을입히라는 지시까지 내렸습니다. 이런 온갖 고난과 역경를 이겨내고 마침내 로빈슨은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서며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최초의 흑인 선수이면서 최초의 흑인 올스타, 최초의 흑인 MVP, 최초의 흑인 명예의전당 헌액자 역시 재키 로빈슨이 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선수이자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스키아가 로빈슨에게 왕관을 씌워주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바스키아가 로빈슨에게 왕관을 씌워준지 15년만인 1997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로빈슨 데뷔 50주년을 맞아 그의 등번호 42번을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복싱이나 농구, 야구와 같은 스포츠 분야와 함께 흑인이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재즈나 블루스 같은 음악 분야입니다. 특히 재즈는 본래 뉴올리안즈 흑인들의 음악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흑인들처럼 바스키아가 재즈에 심취한 것은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재즈는 스포츠와 더불어 생전에 바스키아가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던 분야인 만큼 흑인 스포츠 영웅들과 함께 찰리 파커나 마일즈 데이비스같은 재즈의 거장들은 그의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스키아는 뮤지션들과 각자의 파트를 기록한 단어 리스트만으로 구성된 '디스코그래피1', '디스코그래피2'를 통해 찰리 파커와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낡은 LP판의 뒷면을 보는 듯한 그의 디스코그래피 연작처럼 그의 작품에는 온전히 이름과 단어 리스트 만으로 구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바스키아는 그것을 '사실(facts)'이라 불렀는데, 그의 낙서화에서 문자는 상징적 기호 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습니다.
찰리 파커에 대한 바스키아의 경외감은 '찰스 최고'에 한층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테너 색소폰의 황제이자 비밥 재즈의 창시자이며 모던 재즈의 선구자였던 찰리 파커는 바스키아에겐 음악적 영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찰리 파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 같은 작품이 바로 'Charles the First', 즉 '찰리 최고'라는 작품입니다. 얼핏 두서 없는 낙서 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음악가의 삶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삼면화에는 왕관이 여러군데 그려져 있는데, 특히 맨 왼쪽에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 신과 연결시켜 찰리 파커에게 빛나는 왕관을 씌워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슈퍼맨의 상징인 'S'자 심벌을 덧붙여 단순히 뮤지션을 넘어서 히어로의 의미까지 부각시켜 놓았습니다.
가운데 부분 상단에는 파커의 딸 이름인 프리와 그녀의 생몰 연대까지 적혀있습니다. 오른쪽 부분의 '체로키(Cherokee)'는 파커가 작곡한 유명한 재즈 스탠
더드입니다.
찰리 파커는 재즈 특유의 즉흥성과 테크닉을 확장시켜 비밥 스타일을 창조해낸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지만, 아쉽게도 그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는 평생 마약과 약물에 빠져 살았고, 숱한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나중엔 정신분열까지 일으켜 몇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찰리 파커의 삶은 미술가로서 성공했지만 문화계의 위선과 방탕 속에서 번민하고 방황하다 결국 마약 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바스키아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술적 천재성과 방황하는 삶 그리고 비극적인 종말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파커와 바스키아 삶의 공통된 부분입니다. 아마도 바스키아는 자신이 동경하던 우상들의 천재성 뿐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까지 동경했는지도 모릅니다.
"열일곱살 이후 나는 늘 스타를 꿈꿨다.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 같은 우상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들이 유명해진 방식에 낭만을 느꼈다." [장 미셸 바스키아]
박정은기자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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