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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탐구]'세븐' '파이트클럽'의 데이빗 핀처, 스타일리시 영상미에서 거장에 이르기까지

기사 등록 2016-10-2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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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누군가 걷는 길엔 그의 족적이 남는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그가 걸었던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와 감독들은 언제나 모두에게 그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영원의 순간을 선물한다. [필모탐구]는 이들의 필모그라피를 통해 배우와 감독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시작이 반이라는데 그에게는 가시밭길과 같았다. 유명 시리즈의 속편, 대형 제작사, 아이콘이 된 배우와 함께 하는 촬영장은 오히려 그에게 매일이 투쟁과도 같았다. 1992년 '에일리언 3'가 CF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던 데이빗 핀처 감독의 첫 데뷔작이었다.

결국 그는 잘못 낀 첫 단추 때문에 혹평으로 필모그라피를 시작했다. 하지만 와신상담이라 했던가. 그는 1995년 ‘세븐’으로 느와르 장르에 길이 남을 두 번째 단추를 끼게 됐다. 데이빗 핀처는 이를 시작으로 ‘잘못된 단추’는 잊고 차근차근 옷을 여미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장’이란 호칭이 아깝지 않은 ‘헐리우드 대표 감독’에까지 이르게 된다.

# 전반기 - 그의 영화엔 현란한 스타일이 있었다

말했다시피 ‘에일리언 3’는 지금까지도 데이빗 핀처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에일리언’ 시리즈가 20주년을 맞이해 확장판을 새롭게 공개할 때도 데이빗 핀처만큼은 그 작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제작자와 영화사의 입김에 편집권을 박탈당해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일리언 3’의 암울한 분위기는 1995년 ‘세븐’으로 고스란히 이전된 것처럼 보였다. 은퇴를 앞둔 노년 형사와 새로 부임한 젊은 형사가 의문의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 영화에서 데이빗 핀처는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의 카메라를 빌려 비가 내리고 음침한 분위기의 대도시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단테의 ‘신곡’.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통해 잔혹한 내용에 우아한 느낌까지 더한 독특한 느와르를 완성시켰다.

초창기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라피가 가진 특징은 보통 ‘널뛰기’로 요약된다. 모든 감독이 그렇지만 데이빗 핀처는 2007년 여섯 번째 장편영화 ‘조디악’ 이전까지는 범작과 걸작을 오가는, ‘퐁당퐁당’ 같은 느낌이었다. ‘세븐’ 이후의 1997년 ‘더 게임’도 마이클 더글라스, 숀 펜의 연기와 사람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가는 스토리에도 불구, 그 결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스릴러였다.

그렇지만 1999년 ‘파이트 클럽’은 일각에서 같은 해 공개됐던 ‘매트릭스’와 함께 ‘20세기 마지막 명작’이란 평가를 받는 걸출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 평은 완전히 갈렸지만 이후 2차 매체를 통해 재평가됐다는 점에서 ‘블레이드 러너’나 ‘쇼생크 탈출’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현대사회에 찌든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는 물론이고 브래드 피트의 극에 달한 매력은 이 영화를 보는 누구든 타일러 더든이란 인물에 동조하게 만든다. 또한 데이빗 핀처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이 가장 강조됐던 작품으로 CG로 만들어진 쓰레기통 장면, 냉장고 폭발 장면 등 거칠고도 유려한 영상이 일품이다.

2002년 ‘패닉 룸’에서도 다시 한 번 ‘미끄덩’한 데이빗 핀처 감독은 차기작인 ‘조디악’을 개봉할 때까지 자그마치 5년이란 시간을 들였다. 그가 촉망받던 감독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조디악’이 그의 필모그라피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 후반기 - 진정한 거장의 자리에 앉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미국 전역을 흔들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 사건을 영화화한 2007년 ‘조디악’은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항상 따라붙던 ‘스타일리시’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했다. 이 작품에서 데이빗 핀처는 그동안 제작했던 자신의 작품과 전혀 다른, 묵직함이 느껴지는 연출로 ‘작가’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

물론 그의 기술력은 현란함을 감췄을 뿐, 1970년대를 재현하는 데 사용됐다. 세트에 CG를 덧입힌 1970년대는 지금도 인터넷 등지에서 ‘조디악’의 CG 작업 영상이 종종 보일 정도다. 이는 우직한 연출과 맞아떨어져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실제감을 선사했다.

사실 이 작품으로 발돋움한 건 데이빗 핀처만이 아니다. 주연 배우 제이크 질렌할, 마크 러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이 영화에서 탁월한 연기로 158분이란 긴 상영시간동안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조디악’의 호평 후 데이빗 핀처 감독은 ‘보증수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들을 찍었다. 2008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10년 ‘소셜 네트워크’, 2011년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014년 ‘나를 찾아줘’까지. 심지어 1·2화 연출과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까지 연이은 호평 세례를 이어갔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브래드 피트와 데이빗 핀처 감독이 다시 만난 작품이다. CG 사용에 거침없는 데이빗 핀처는 ‘거꾸로 사는’ 벤자민 버튼을 스크린에 표현해냈고, 브래드 피트는 그 특별한 인간을 보통의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섬세한 감정연기로 영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가슴 아프면서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장면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삶의 상호작용’ 시퀀스는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 창립 과정을 기반으로 제작된 ‘소셜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얘기였지만 이제는 명시나리오 작가로 불리는 아론 소킨의 시나리오와 데이빗 핀처의 리듬감 있는 편집감각을 통해 더욱 입체적인 영화로 거듭난 작품이다. 또한 ‘역시’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아미 해머를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로 만들었다.

지금 ‘소셜 네트워크’가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라피에서 중요한 지점이 된 건 완성도뿐만 아니라 마크 주커버그의 (전) 여자친구 역 배우 루니 마라의 발견이 2011년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동명의 스웨덴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루니 마라는 리스베트 역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모든 관객들을 깜짝 놀랄 연기를 펼쳤다. 스웨덴에서 제작된 영화에서 같은 역을 맡은 누미 라파스와의 비교는 영화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캐런 오가 커버한 레드 제플린의 ‘이민자의 노래(Immigrant Song)’로 시작되는 파격적인 오프닝부터 영화에 담긴 표현들까지, 스웨덴 로케이션 촬영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 이 영화만이 갖는 독특한 감성을 완성시켰다. 결국 흥행에는 실패해 3부작 제작이 불투명해져 아직도 데이빗 핀처 팬들이 기다리는 차기작 1순위이기도 하다.

2014년 ‘나를 찾아줘’는 영리하다고 표현해야 할 두 배우의 호연과 데이빗 핀처의 진득하고도 작품의 템포를 가지고 노는 특유의 연출이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발현한 작품이다. 유명인사인 아내가 실종되자 그를 찾아나선 남편의 이야기로 치밀하게 쌓여가는 서스펜스는 동명의 원작 소설 작가이자 시나리오도 담당한 길리언 플린의 공도 있다.

데이빗 핀처는 빠른 템포를 취하기보다 아주 천천히 옥죄는 듯한 연출 방향으로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를 낱낱이 드러냈으며 그것은 곧 관객들에게 반전 이상의 통찰을 선사한다. 그는 또 루니 마라처럼 이 작품에선 로자먼드 파이크의 역량을 한껏 드러내게 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자신의 전세계 흥행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현재 데이빗 핀처는 길리언 플린과 함께 앨프리드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리메이크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현재 이 작업과는 별개로 드라마나 시나리오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소식을 듣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를 찾아줘’의 콤비가, 그리고 긴 시간을 들이면 그만한 완성도를 들고 오는 데이빗 핀처가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어떻게 재창조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성찬얼기자 remember_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