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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특허 털어도 끄떡없다"...'기술 침해'에 무력한 韓 사법체계

입증 어렵고, 소송 길고, 배상금 적어...혁신 생태계 붕괴 위기

기사 등록 2025-11-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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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중앙 제어시스템으로 수만명의 객석을 일사불란하게 컨트롤하는 'K-응원봉' 연출모습
[이슈데일리 황용희기자] 기술탈취, 왜 막을 수 없나?
한기업이 자신들의 명운을 걸고 개발한 기술 특허가 후발주자들에게 침해당해도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현행 법률 체계'가 실효성을 잃으면서, 국가의 혁신 생태계가 위기에 처할수도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팬라이트'가 '비트로'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소송', '현행법률체계가 시대적인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나'를 되묻게 한다.

최근 수년간 업계의 관심사가된 K-응원봉 관련 '특허침해 소송전'이 대법원에서 곧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행법률체계가 특허권자의 권리 보호에 '잘 대처하고 있느냐'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K-응원봉의 선두주자인 팬라이트가 지난 2020년 비트로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비트로의 지속적인 시간끌기에 재판이 무려 5년간 이어진면서 제기된 논제다. 팬라이트 주장에 따르면 '권리침해'를 한 비트로는 '어떻게 응원봉을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스 코드' 등의 제출만 정당히 했어도 승패는 1심에서 끝날수 있었다는 것. 응원봉 실행의 '소스코드 제출'을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만 있었어도 많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공정한 결과를 얻어낼수 있었다는 이들의 주장이다.

▲디지털 시대, 특허 침해 입증은 '불가능 게임'

실제로 침해 소송에서 가장 큰 난관은 '입증'이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 분야에서의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침해 혐의를 받는 기업이 소스 코드 등 핵심 자료를 비공개로 하면, 피해를 입은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리 디지털 포렌식을 동원해도 한계가 있다"며 "특히 "자료가 암호화되어 있을 경우 사실상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특허법상 원고가 침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에서, 침해자들이 기술침해를 입증할 감춰버린다면 사실상 그 소송은 끝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 재판부가 피고(침해자)의 입증책임이 필요하다고 할 경우 '침해자에게 소스 코드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법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송 장기화에 자금 고갈..."기술은 발전하는데 법원은 제자리"

입증의 어려움은 필연적으로 소송 장기화로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사법 절차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재정적 여력이 약한 중소기업이나 초기 스타트업은 소송 비용 자체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쳐서 사업을 접거나 도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특허 침해 소송은 1심부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평균 3~5년이 소요되며,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은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과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기술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이를 입증하기 위해 회사 존립까지 걸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승소해도 남는 건 허탈함..."손해배상액, 변호사 비용도 못 건진다"

설령 중소기업이 수년간의 소송 끝에 승소한다 해도, 실질적인 피해 회복은 요원하다.
현행 특허법상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은 ▲침해자가 얻은 이익 ▲특허권자가 입은 손해 ▲실시료 상당액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법원이 인정하는 배상액은 실제 피해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지식재산 전문 변호사는 "침혜기업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의 특허를 침해해 수백억 원의 이익을 냈어도,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은 수억 원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소송 비용과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특허를 침해해도 나중에 적은 돈만 물어주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 대기업의 기술 침해를 오히려 조장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해법은 '징벌적 배상'..."미국처럼 강력한 특허 보호가 혁신 부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전면 도입을 핵심 대안으로 제시한다.
징벌적 배상이란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금을 부과해 침해 행위를 강력히 억제하는 제도다. 미국의 경우 특허 침해 시 실제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을 명령할 수 있으며, 악의적 침해의 경우 더 높은 배율이 적용되기도 한다.
한 경제 전문가는 "단순히 '기술 탈취하지 말라'는 윤리적 당부만으로는 실제 침해 행위를 막을 수 없다"며 "침해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특허 보호 체계 덕분"이라며 "특허가 확실히 보호되니까 벤처캐피털(VC)의 투자도 활성화되고, 이것이 다시 기술 혁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제도 개선 시급..."언론이 문제 제기해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문제는 단순히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국가 혁신 생태계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며 "언론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특허 생태계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개발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신속한 제도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황용희기자 zonehee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