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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탐구]틈새를 비트는 일상성, 봉준호 감독에 대하여

기사 등록 2016-11-0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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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항상 그에게 별명처럼 따라붙던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말은 이제 희미해졌다. 점점 긴 시간 작품을 준비하며 한국을 넘어 헐리우드 진출까지 탄탄대로를 밟고 있는 그는 이제 그 이름 석 자가 곧 그의 영화세계를 상징하게 됐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은 현재 헐리우드에서 '옥자'를 촬영하고 있다.

매 작품,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과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을 접합시키는 봉준호 감독은 단 6편의 장편 영화만으로도 한국을, 그리고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늘상 허술한 인물들을 데리고 어떤 위기에 봉착시켜 새로운 지점을 짚어내는 감독, 봉준호의 작품들을 들여다보자.

# 플란다스의 개 (2000)

'탄탄대로'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봉준호 감독이 시작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첫 작품에서 그가 만든 인물들처럼 헛발을 딛기도 했다. 2000년도 당시 가장 큰 배급사였던 시네마서비스의 지원사격 아래 개봉했지만 관객수 10만 명에서 그치고 말았다.

사실 '플란다스의 개'는 실패라고 하기엔 부적절한 작품이다. 그가 만드는 영화 속 장면들의 독특한 리듬감이나 유머는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평단에서도 이 작품을 향해 혹평을 내리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플란다스의 개'가 가진 일상적인 이야기와 유머는 관객들을 크게 끌어들이지 못한 채 아쉬운 수치를 남겼을 뿐이다.

말했듯 '플란다스의 개'는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일상을 향한 날카로운 비틀기가 원형처럼 존재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이면이나 어딘가 허술한 주인공들이 바로 그것이다. '플란다스의 개'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분석되면서 특유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뷔작으로 발돋움했다.

# 살인의 추억 (2003)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 대한민국 대표감독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525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한 '살인의 추억'으로 그는 단번에 '천재 감독'이란 질투어린 애칭을 듣기도 했다. 1980년대 대한민국 전역을 흔들었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영화계 명작에서 빠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였다.

'살인의 추억'이 이정도로 걸작 취급을 받는 건 이 작품에서 배우, 연출, 스토리라는 영화의 요소들이 합일을 이뤘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와 해석이 녹아든 시나리오와 그걸 토대로 매 장면마다 상징과 스토리텔링 적절히 숨겨둔 봉준호 감독의 연출,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친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박해일 및 배우들까지. 이 모든 요소들은 그야말로 '삼위일체'가 돼 '살인의 추억'을 보면 볼수록 더욱 감탄케 하는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또한 이 작품은 그의 명성이 해외에도 닿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처럼 영화광 감독으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92년 이후 17년 간 발표된 최고의 영화 20편'에 포함시키기도 했고, 미국 영화매체 씨네마스코프에서도 2000년대 최고의 영화 9로 뽑기도 했다.

# 괴물 (2006)

이후 봉준호 감독은 기세를 모아 스스로 당대 최고의 흥행작을 연출하게 됐다. 한강에서 괴수가 출현한다는 스토리의 '괴물'은 한국 영화사상 네 번째 '천만영화'로 등극하는 영예를 누렸다. 송강호, 배두나, 박해일, 변희봉 등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 함께 했던 배우들은 '괴물'에서 빼어난 연기로 호흡을 만들며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괴수영화라고 분류되긴 하지만 '괴물'은 봉준호 감독 작품답게 시대를 파고드는 시선이 강한 영화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이 '봉준호의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괴물'는 2000년대에 폭발했던 반미적 정서, 시스템만 갖춰져 허울뿐인 사회, 정부를 향한 비판까지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꿰뚫은 정신이 내재돼있다.

그러나 '괴물'이 좋은 평가를 받는 건 그런 요소들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의 완성도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괴수 영화들이 일반적으로 영웅들의 사투였던 것과 반대로 한 소녀의 생존기이자 가족들의 수색기를 다뤘다는 것, 스릴러와 코미디의 경계선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것, 극 중 인물들의 성격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만드는 분위기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는,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마더 (2009)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봉준호 감독은 ‘도쿄!’에서 ‘흔들리는 도쿄’로 잠시 시선을 돌린 후 이후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도전한다. '마더'는 무시무시할 정도 모성애를 뒤틀고 그것을 풀어내는 데 온힘을 다하는 작품이다. 누명을 쓴 아들을 위해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도, 그렇다고 아들과 엄마의 끈끈한 관계가 감도는 영화도 아니다. 오로지 ‘엄마’라는 일상의 통념을 깨고 그 조각들로 새로운 엄마를 맞춰나가는 영화이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 엄마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김혜자와 ‘완벽남’ 원빈의 이미지 변주가 있기에 ‘마더’의 시선은 완성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 김혜자를 ‘다르게’ 봤기 때문에 ‘마더’가 제작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으니 그가 김혜자에게서 발견한 ‘모성애’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영화 속에 그대로 스며들어있다.

또한 ‘마더’는 그의 작품에서도 무척 이색적인 분기점에 위치해있다. 그동안 일상에서도 만날 법한 인물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그려낸다면, ‘마더’에서는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해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그 결과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수상 이력이 가장 화려한 작품이기도 하다.

# 설국열차 (2013)

봉준호 감독은 ‘마더’ 이후 ‘설국열차’ 제작에 착수했다. 프랑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원작과는 별개로 봉준호 감독의 급진적인 인간관이 아로새겨진 작품이다. 전체를 통제하는 시스템과 존엄성을 쟁취하기 위한 군중의 투쟁이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액션과 SF를 배합시켜 풀어냈다.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헐리우드 배우는 물론 음악을 담당한 마르코 벨트라미, 프로듀서 로버트 버나키·데이비드 민코브스키 등 스태프까지 글로벌팀으로 꾸린 ‘설국열차’는 한국 사회를 주시하는 시선을 넘어 세계적으로 ‘먹히는’ 메시지를 장착한 채 167개국에 사전 판매돼 이목을 모았다.

애초 해외 시장까지 노리고 제작됐던 작품이었던 만큼 북미 시장도 와인스타인 컴퍼니를 통해 개봉했다. 그 결과 해외시장에서도 2014년 개봉작 리스트에 오르는 등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설국열차’로 질주했던 봉준호 감독은 현재 넷플릭스의 투자 지원을 받아 다시 전세계를 노리는 ‘옥자’ 촬영 중에 있다. 한국의 극장 개봉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봉준호의 차기작을 스크린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시간을 전작들과 함께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찬얼기자 remember_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