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비하인드②] 조진웅 "서브텍스트가 '뿌리'를 깊게 만든다"

기사 등록 2011-12-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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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키 185 센티미터, 몸무게 0.1톤의 곰같이 우직한 그가 날렵해졌다. 하지만 혹독한 다이어트의 결과, 캐릭터의 무게감은 더했고 절대 비중은 늘어났다. 극적인 반전보다 더한 반전을 꾀한 이 사나이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수많은 '곰덕후' 여성팬을 자극하던 그가 날렵한 호위무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이슈데일리는 조진웅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진솔한 속내와 연기자로서의 조진웅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가 펼쳐갈 새로운 이야기들을 미리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주>



한창 '뿌리깊은 나무'를 촬영 중인 파주 SBS 세트장으로 조진웅을 만나러 갔다. 이미 말투마저도 무휼의 그것으로 바뀌어있었다. 무휼은 필자를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었던 '공부방'으로 안내했다.

내금의장 무휼과 세종 이도의 관계는 마치 부부같다. 대선배님인 한석규와의 호흡은 이번이 둘의 첫 만남이라기엔 믿기지않을만큼 자연스럽고 주고 받는 농에서도 조차 무휼과 이도의 지난 세월이 엿보일만큼 깊다.

"처음에 (한석규 선배님을) 뵈었을 때는 너무 어려웠어요. 그냥 배우도 아니고 '한석규'라는 명성이 있는 대배우인데 어떻게 연기를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머리 속이 하얗게 됐죠. 그래서 뭐 무조건 앵겼죠.(웃음) 연기할 때마다 '선배님, 어떻게 해요? 이렇게 해요? 저렇게 할까요?' 하고 여쭈면 '아이씨, 나도 몰러, 이놈아' 이러세요. 이도 캐릭터를 늘 달고 사세요(웃음)"

분명 한석규의 이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종대왕의 전형적인 정체성과도 달랐고 초반 송중기가 연기한 젊은 이도와도 달랐다. 송중기에서 한석규의 이도로 옮아가는 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채워넣었을까.

"초반 송중기의 호위무사 무휼과 한석규 선배님의 내금의장 무휼은 톤자체도 그렇고 호홉도 달라져야만 했죠. 송중기를 위한 무휼이 보디가드가 가진 전형성이 짙었다면 한석규 선배님 옆에서는 그 지난 세월간의 깊이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움도 묻어나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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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젊은 이도 송중기의 무휼과 한석규의 이도 옆 무휼>

"송중기의 이도와 한석규 선배님의 이도 사이를 오갈 때는 힘들었어요. 순차적으로 별개로 찍었던 장면이 아니고 여기와서 이거찍고 저기가서 저거찍고 하면서 겹쳤거든요. 그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리액팅이고 선배의 반응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선배에게 감사드려요. 만약 거기서 조금이라도 '이렇게 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타박을 받았다면 아마 얼어서 현장에 못 나왔을겁니다.(웃음)"

조진웅의 말에서는 한석규라는 배우에 대한 경외의 감정도 묻어나왔다. 물론 그는 두려워만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무대 위에 선 배우로서 존경하고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보여주는 기분 좋은 존경심을 엿보였다.

"어쩔 때는 내가 저 나이되서 연기할 때 나도 후배들한테 저럴수있을까 싶어요. 그들을 왜 '배우'라고 부르는지, 현장에서 함께할 때면 자부심이 느껴져요. 그래서 '나 따위가 연기를 못할 수가 없다'는 긴장감과 사명감을 늘 느끼고 살아요"

그런데 앞서 말했던대로 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에 맞서며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젊은 이도 송중기를 지키던 카리스마 무사 무휼은 한석규의 이도로 넘어와서는 왠일인지 이도의 농에 늘 당하고만 산다. 그런 식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궁금해졌다.

"난 하던대로 했는데 괜히 그래.(웃음) 이도가 성격이 왔다 갔다 해요. 종잡을 수가 없어요. 그만큼 천재성이 있는건 알고 있는데 또 그만큼 변덕스러운거죠. 무휼의 이도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때문에 그 부분을 다 이해하려고 하고 따르지만 또 그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 나오니 당황스러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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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불같은 성격의 이도>

"사실 이도 옆에 항상 같이 붙어있는 정인지 역의 혁권이 형이랑 매번 코미디를 해요. 그 내용이 이런거죠. 이도가 갑자기 쨍그랑하고 도자기를 깨요. 그럼 놀래서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지금 당장 경연을 준비해라' 이런식으로 소릴치잖아요 이도가. 그럼 우린 심각한 표정을 짓죠. 하지만 거기에 번외편이 있어요. 이도가 또 '쨍그랑'하면 우린 ‘에이씨 니가 가!’하고 서로 콕콕 찌르고 눈치보고 안가고 싶어하죠.(웃음) 이도가 '경연준비를 해라' 그러면 우린 서로 쳐다보며 '왜 또 저래?'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고 재밌게 촬영했어요"

"이런 배우들만의 서브(서브텍스트)가 실제로 재미있는 장면을 살릴 때 드러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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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이도가 무휼에게 개 울음소리를 시킬 때 황당해하는 정인지와 무휼>


그리고 보니 무휼이 초반 '조선제일검'으로 등장해 '무사 무휼'을 외치던 때와는 달리 웃음을 주는 재미있고 심지어는 수줍은 캐릭터로도 변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부분이 이전의 진지함과 대치되면서도 이도와 무휼의 더 풍부한 인간적 관계를 설명하는 장치로 쓰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게 어리버리한 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부분도 있고...(머뭇) 아유, 사실 한석규 선배님이 극중에서 맨날 혼내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가만있어’ 막 그러시잖아요. 내가 '급하다고 빨리 가야됩니다'라고 진지하게 딱 그러면 ‘잠시만 있어봐’, ‘가만 있어’하고 컷소리가 나면 저는 ‘에이씨’ 그러죠. 그럼 스태프들이 막 웃어요. 현장만이 가진 재미예요. 이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엔 촬영장에 올 때가 제일 즐거워요."

"한번은 '선배님!'하고 인사하러 하는데 한석규 선배가 '진웅아 대본 봤니? 보니까 여기서 우리가 코미디(리액션)를 살짝하더라. 재밌게 한번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근데 무휼이 사실 진지한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제가 '저는 이런 캐릭터인데 정도를 지키기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한석규 선배님이 '우리가 살면서 그래도 너랑 나도 인간이겠지, 여기서는 제대로 살려볼까?' 그렇게해서 무휼과 이도의 코미디 장면이 탄생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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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이도에게 핀잔을 듣고 있는 무휼, 둘만의 세월이 잘 묻어난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장면만이 한석규와 조진웅이 가진 서브텍스트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좀 더 내밀한 부분에서의 호흡이 딱 맞는 느낌이예요.

"역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사람끼리의 관계죠. 무휼이 이도에 대한 생각은 왕으로서 지켜보는게 아니라 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도 그 자체가 조선이다 보니까 그게 무휼의 목표가 되는거예요."

"어쩌다가 이 사람이 '나의 조선'이 울고있을때는 정말 가슴이 아픈거죠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이고 울분이 생기는거죠. 무휼이 그런 연유가 아니면 어디가서 울고있거나 마음 아파하는 약한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태종이라는 가장 큰 적이자 조언자가 없어졌을 때 이도가 겪는 그 고통을 느껴야만 했어요. 이방원이 죽고 이방원이 없는 이도가 혼자 맞닥뜨렸을 때 느꼈을 굉장한 혼란과 자신만의 조선을 창조하기 위한 힘들고 지난했던 그 과정을 생각하는거죠."

"한석규 선배의 이도가 되면서 '지랄'을 입에 달고 사는 신선한 임금. 거기서부터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잖아요. 이 때 그 세월의 흐름만큼의 깊이가 있어야겠다. '그 깊이 없이는 여기서 어떤 코메디도 날 것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또 그 깊이를 찾는 과정 자체가 되게 재밌었어요"

"그런 디테일들을 시청자들이 안 불편하게하려고 리허설을 많이 하죠. 중간 중간 세트 밖에서 한석규 선배님과 하나 하나 맞추고 얘기를 많이 나눠요."

"연기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죠. 작업 초반부터 선배님하고 저하고 지나왔던 얘기들부터 가정환경, 출신, '어떻게 대학은 어디를 가고' '나는 이렇게 살았고' '내가 허리를 다쳤잖니' 등 등 신변잡기에 관한 잡담까지 그런 애기들을 나누죠. 시청자들이 무휼과 이도를 보시면서 즐거워할 때면 한석규 선배님과 서로 오래 지내지않았음에도 이렇게 노력한 것이 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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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웃고있는 이도와 무휼, 한석규와 조진웅의 서브텍스트가 캐릭터 디테일을 살려낸다>

"작업하면서 내용 자체도 그렇고 대사 칠 때 어미 처리하나도 어렵게해요. 말을 잘못해 버리면 이상해지니까요. 항상 옆에서 좋은 연기자의 본보기를 보고 있으니까 그런 공부가 되게 많이 되죠."

"여기서는 '아이컨택이 되느냐' '호흡을 언제 뱉느냐' '보고 느끼느냐' '보고 빼느냐' 또 '빼면 얼만큼 빼느냐' 각 장면과 상황마다 느낌이 다 틀려요 그런 연기 공부를 처음 해보는 것처럼 새롭게 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뿌리깊은 나무'는 특별해요. 한석규 선배님 뿐만 아니라. 많은 좋은 연기자들이 가득하죠. 집현전 촬영 때나 회의 때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행복하죠. 좋은 선배님들도 경연장이나 세트장에 가면 다 있고 연기 잘하는 기특한 후배들도 쫘악 명배우들만 모여 있으니까 어느 때는 보는 것만으로 마냥 황홀하죠."

배우 조진웅과 대화를 나누면서 '뿌리깊은 나무'가 가진 힘, 특히 무휼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을 알아볼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무휼의 다양한 모습은 그가 이해한 서브텍스트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서브텍스트는 간단히 인물의 말과 행동에 대한 동기이자 해석이다. 서브텍스트를 이해함으로써 상황적 문맥 속에서 인물이 가진 미묘함까지 캐치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무휼과 이도의 관계가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하는 데는 명품배우인 한석규와 조진웅이 각각의 인물이 가지는 특별한 내적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재구성하면서 무휼과 이도만이 가진 인물들의 특성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은 대본 안에서 주어진 행간을 벗어나 배우 자신의 특성까지 옮겨냈다. '뿌리깊은 나무' 속 이도와 무휼이 풍부한 표현과 함께 살아있는 신선함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정리 박상준 기자 sj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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