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장 베로의'샹젤리제 거리에서 모자를 파는 여인'

기사 등록 2011-09-2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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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베로,샹젤리제 거리에서 모자를 파는 여인, 1888년,캔버스에 유채, 45.1 X 34.9 cm,개인소장.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장 베로는 화려한 색채와 디테일한 구성으로 파리의 여인과 사교계를 화폭에 담은 화가로 유명합니다. 그는 인상파 시기에 활동했지만 인상파 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정밀하게 파리와 파리의 시민들을 그려냈습니다. 무엇보다 19세기 파리 여인을 섬세하고 감성적인 터치로 화폭에 담는 것이 장 베로의 주특기입니다.

파리 시내를 활보하는 멋쟁이 여인들을 그린 '파리 여인'(1895)이나 '샹젤리제 거리에서 모자를 파는 여인'(1888)들에 나오는 그림 속의 여인들은 지금 당장 파리 시내에 갖다 놔도 어울릴 정도로 대단히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도심의 여인들을 장 베로 만큼 화사하고 매력적으로 묘사한 화가도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고 사뿐사뿐 파리 시내를 걷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모자를 파는 여인'은 도시 여인을 묘사하는데 남다는 재능을 지닌 장 베로의 특출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비가 그친 뒤에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를 한 멋쟁이 여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드럼통 같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인은 모자 장수로 보입니다. 왼손엔 가방을 들고, 오른손엔 가볍게 우산을 쥔 채 사뿐히 거리를 걷고 있는 여인은 참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새를 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우아한 자태에 왼편의 신사는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모르긴해도 아마 여인은 여성용 모자를 파는 상인 같습니다. 만약에 이 여인이 남성용 모자까지 취급했다면 거리의 신사들이 아마 줄을 서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됩니다. 그 만큼 여인의 세련된 맵시는 단순히 모자를 파는 상인이 아니라 귀부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산뜻한 모자에서 심플하고 우아한 외출복을 거쳐 정갈한 구두에 이르기까지 여인의 모습을 보면, 패션의 첨단을 달리는 파리지엔의 패셔너블한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렇듯 장 베로는 주로 파리 시내를 활보하는 사람들 중 특히 여인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선 여인들의 매혹적인 자태와 함께 도심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게 또한 특징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여인의 오른편으로 시원하게 닦아놓은 샹젤리제 대로를 마차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리따운 여인과 비가 그친 뒤의 산뜻한 거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나폴레옹 3세 시절인 19세기 중엽은 오스망 남작의 도시 재개발 계획을 통해 파리가 근대적인 도시로 변모하던 시기였습니다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없어지고 넓고 탁트인 대로가 만들어져 파리 시민들이 마음껏 도심을 활보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파리는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입니다.

근대적으로 재개발된 파리는 인상파 화가들의 좋은 모델이 되었는데, 장 베로도 그런 파리의 도심을 누비면서 거리의 활기찬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는 마차 안에 앉아 스케치를 해서 밑그림을 완성한 뒤, 자기가 본 그대로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그것을 보고 그리는 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카퓌신 대로'나 '번화가' 같이 도심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그림들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 베로의 작품은 사진은 아니지만, 사진보다 더선명하고 사실적으로 재개발된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장 베로는 원래 법학도였다가 재능을 살려 보불 전쟁 이후 화가로 변신했다고 합니다. 상당수 인상파 화가들이 교외로 나갈때, 그는 도심 한복판을 배경으로 도시민의 삶과 일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특히 사교계의 파티 같은 상류층의 삶에 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사교계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여인과 거리, 파티,사교계 등을 소재로 하는 장 베로의 그림은 화사한 색채와 로맨틱한 묘사로 다분히 여성 취향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인상파 시기에 활동한 화가지만, 인상파로 분류되지 않는 장 베로의 작품들은 여성 취향적이어서 그런지 당대의 대표적인 화가의 하나였음에도 후대에 인상파 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 베로는 후세인들이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명명했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19세기 후반 파리지엔의 삶과 그 시절 파리의 활기찬 분위기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박정은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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