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모딜리아니와 그의 아내 잔 에뷔테른'

기사 등록 2012-01-07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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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Jeanne Hebuterne in a Yellow Sweater, 1918/19,캔버스에 유화, 100 X 64.7 cm,체로니 220,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모딜리아니가 그린 초상화들은 얼굴을 길게 늘여뜨려 과장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의 초상화는 '길어서 슬픈 여인'이라는 통속적인 문구가 떠오를 정도로 얼굴과 목을 가늘고 길쭉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얼굴에선 한결같이 코 부분을 가늘고 길게 그려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딜리아니는 범접할 수 없는 균형감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해냈습니다.

길게 늘어진 얼굴은 쓸쓸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우아하면서도 고고한 느낌을 줍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은 특징이 뚜렷해 알기 쉬운데다 거의 일관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서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까지 쉽게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초상화와 누드화가 20세기 이후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그림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결핵에 걸려 무일푼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모딜리아니의 비극적인 삶 만큼이나 그의 그림들에선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모딜리아니 만큼이나 고독해 보입니다. 모딜리아니처럼 작품과 화가가 이렇게 극적으로 매치되는 경우도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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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에뷔테른의 초상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8,캔버스에 유화, 91.4 X 73 cm,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네이트 B. 스핀골드 부부 기증, 1956(56.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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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에뷔테른의 초상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9,캔버스에 유화, 55 X 38 cm,체로니 223,개인 소장

예술가로서 모딜리아니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 했습니다. 생전에 모딜리아니는 화가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질병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알콜 중독에 빠졌있던 순간에도 술집들을 돌며 초상화를 그리는데 몰두했습니다. 모델을 살 돈이 없었던 그에게 몽마르트 거리의 여인들은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스쳐간 여인들도 대부분 불행했습니다.

이렇듯 보헤미안 스타일의 자유분방하고 낭만적인 삶에 비극적인 종말이 더해지면서 모딜리아니와 그의 작품을 대상으로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반 고흐와 마찬가지로 모딜리아니도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사망한 이후에야 유명 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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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에뷔테른 - 화가의 아내Jeanne Hebuterne - The Artist's Wife, 191캔버스에 유화, 100 X 65 cm,체로니 219,패서디나(갤리포니아), 노턴 사이먼 미술재단

1900년대 초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보헤미안 식의 삶을 살면서 다양한 사조의 미술양식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다 1909년 돌연 회화에서 조각으로 관심을 돌려, 이후 1914년무렵까지 조각가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화가에서 조각가으로 돌아선 이유를 놓고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지만,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고대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인상과 아프리카 원시 조각상에서 얻어진 영감이 그를 조각가로 이끌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런데 조각에의 심취는 이후 모딜리아니 회화를 특징 짓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두상' 조각들을 보면 모두 길게 늘어뜨린 얼굴에 기다란 코와 작은 입을 갖고 있습니다.

원시 미술을 재해석한 것으로 평가 되는 모딜리아니의 조각은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하여 간명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조각에 대한 경험은 이후의 회화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간결하고 선이 중심을 이루는 추상적 형태의 화풍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얼굴을 길게 늘어뜨린 모딜리아니 특유의 화법은 결국 조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딜리아니 특유의 미술 세계가 가장 고결하게 표현된 것은 다름 아닌 모딜리아니의 영원한 연인이었던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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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에뷔테른Jeanne Hebuterne, 1919,캔버스에 유화, 130 x 81 cm,체로니 133,로스앤젤레스, 시드니 F. 브로디 부부 컬렉션.

생전에 모딜리아니는 숱한 여인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중에는 그와 동거 생활을 했던 여류 시인도 있었고,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했던 여인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그와 하룻밤을 보낸 몽파르나스의 여인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알콜 중독에 종종 폭력까지 휘두르던 모딜리아니는 그 누구와도 행복한 삶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전까지 모딜리아니가 만났던그 어떤 여인과도 다른 여인이 모딜리아니 생애 마지막 시기에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분노 따위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고, 천사 같은 부드러움으로 모딜리아니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잔 에뷔테른'입니다. 그녀의 출현은 정말 운명적이었습니다. 잔 에뷔테른은 화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던 중 모딜리아니를 만났습니다.

엄격한 로마 카톨릭 교도였던 그녀의 집안은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고 있는 무명 화가와의 교류를 반대했지만, 잔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딜리아니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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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Portrait of Woman in Hat,(Jeanne Hebuterne in Large Hat), 1917,캔버스에 유화, 55 X 38 cm, 체로니 180,개인 소장

잔을 만나면서 모딜리아니는 '목걸이를 한 잔 에뷔테른',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안락 의자에 앉은 잔 에뷔테른' 등 그녀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그녀는 말년의 병든 모딜리아니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잔은 젊은 열정에 힘든 선택을 했지만, 병약하고 불안정한 모딜리아니 때문에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잔을 향한 모딜리아니 생애 최후의 사랑은 시리도록 슬프고 청순하며 아름다운 초상화들로 재현되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에 그려진 잔은 청순하거나 (잔 에뷔테른의 초상), 몽상에 잠긴듯 하면서도 매우 우아한(화가의 아내,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모습입니다.

어느 것이든 일견 다정다감해 보이면서도 모딜리아니의 불안한 자의식을 공유하려는 듯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입니다.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에서 그녀는 마치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한 듯 한층 더 우아하면서도 더욱 고독한 존재로 그려 져있습니다.

눈동자가 없는 푸른 눈에 목이 길어 슬픈 여인으로 대표되는 모딜리아니 특유의 초상화 양식은 이렇듯 모딜리아니 인생 최후의 동반자였던 잔 에뷔테른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충격을 받은 잔은 그 다음날 만삭의 몸으로 6층 건물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몇년 후 잔의 가족들은 그녀를 모딜리아니 옆에 옮겨 묻어주었습니다. 그녀의 묘비에는 '모든 것을 바친 헌신적인 동반자' 라
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잔 에뷔데른' 그녀는 '모딜리아니' 인생에 사랑과 더불어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어준 매우 중요하며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박정은기자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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