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칼럼] 한문희의 트렌드킬

기사 등록 2015-11-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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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kinson's Fashion Note (18 Nov., 2015)
- 보르게제 미술관(Galleria Borghese)에서 만난 드레스 조각가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

필자는 현재 로마에 있다.
정신없이 바쁜 서울에서의 일정을 뒤로하고 장시간에 걸쳐 날아온 로마에서의 첫날,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보르게제 미술관을 찾았다. 바로크의 거장, 조각가 지오반니 로렌조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보니 늘 ‘아트러버’들로 붐비는 곳이다.

사실 패션 전시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보르게제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알라이아의 의상들이 과연 어떻게 보여질지 기대와 우려의 마음을 안고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 공간의 첫 번째 방에 들어섰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중앙에 위치한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 강탈 The Rape of Proserpine (1621-22)>이었다.

마치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을 가진 듯 실감나게 조각된 두 신화 속 주인공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을 정도였다. 알라이아에게는 미안하지만 베르니니의 작품이 가진 아우라는 필자로 하여금 그곳에 온 목적을 잠시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마치 하나의 오브제처럼 조각 작품들 사이에서 알라이아의 의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2009년 제작된 스커트 부분에 볼륨이 가미된 흰색 가죽 원피스가 인상적이었다. 스커트 아랫부분의 손바느질로 안감을 처리한 디테일에서는 한동안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관찰하기도 했다. 베르니니의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알라이아의 드레스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시선은 전시가 이루어지는 두 개의 층을 모두 지나면서도 조금도 그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어느 순간 초반의 우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알라이아의 작품들과 서양미술사 속 거장들의 조각, 회화작품들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로 상당히 감동적인 전시였다. 알라이아의 의상들은 마치 조각을 한 듯 완벽한 실루엣의 재현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사용된 고급소재와 섬세한 바느질 그리고 마감처리 등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필자가 선호하는 고급 소재 가죽과 안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등 이질적인 재료들을 함께 사용해 만든 드레스들에서는 시선을 떼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알라이아는 특별한 디자이너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과 소비 패턴, 상업성 짙은 패션계에 수공예를 기반으로 진득하니 작품에 매달리는 디자이너는 흔치 않다. 더욱이 재단을 포함해 디자인의 시작에서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한명의 디자이너 손을 거쳐 만들어진 고급 의상들은 더욱이 흔치 않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1939년 튀니지에서 태어나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Christian Dior), 기라로쉬(Guy Laroche) 등에서 경험을 쌓았고,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에서도 일했다. 초반 귀부인들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던 알라이아는 주변의 권유로 1979년 작은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게 된다. 이 컬렉션으로 파리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오늘날 상류층 여성들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를 비롯하여, 팝스타 마돈나, 자넷 잭슨, 나오미 캠벨 등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그의 의상을 즐겨 입고 있다.

특히 편집샵 10 코르소 코모(10 Coroso Como)의 창시자인 까를라 소짜니(Carla Sozzani)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알라이아는 현재 세계 3대 명품 그룹인 리치몬드를 등에 업고 회사 설립 30주년인 2013년에 파리에 3층짜리 플레그쉽 스토어를 오픈한 것을 비롯해 BPI(Beaute Prestige International)와 향수 & 코스메틱 계약을 맺기도 하는 등 드레스 메이킹에 한정되어있던 그의 역량을 한층 확장하며 제 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알라이아의 작품을 오랫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른 많은 이들도 필자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패션이라는 것이 단순히 빠른 유행의 선도라던가 가격 경쟁에 떠밀려 그 본연의 아름다움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이 알라이아라는 한 디자이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칼럼리스트 한문희 : Fashion Designer / Dickinson's Room Ltd.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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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여창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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