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창용의 사극돋보기]'구르미 그린 달빛', 해사함 속에 가려진 세자 이영과 홍라온의 비극적인 운명

기사 등록 2016-09-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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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여창용 기자]매주 월, 화요일 여성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극본 김민정 임예진, 연출 김성윤 백상훈)'은 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꽃미남 내시로 위장한 소녀 홍라온(김유정 분)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린 퓨전사극이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후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순조 재위기다. 또한 '홍경래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건 이후의 시대다.

박보검이 연기하는 세자 이영은 2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외아들로 3세에 왕세자로 책봉돼 18세에 아버지 순조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대리청정에 임했다. 그는 총명함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의욕 넘치게 국정에 임했지만 2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효명세자는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안동 김씨에 맞서 왕권을 강화하고, 국정을 쇄신하려 했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개혁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효명세자 사후 조선왕조는 그의 아들 헌종을 끝으고 대가 끊어져 버렸고, 강화도령이었던 철종과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이 고종으로 이어진다.

조선왕조는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는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장인이었던 김조순에게 의지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천호진이 연기하는 김헌으로 나온다. 아버지 정조와는 달리 유약했던 순조는 장인 김조순을 비롯한 대신세력에게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홍경래의 난'은 순조의 입지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과 서민들에 대한 가렴주구로 일어나게된 '홍경래의 난'은 조선 왕조의 기반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홍경래(정해균 분)를 비롯한 일부 계층의 반란 정도로 시작된 난은 시간이 지날수록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한 대규모 사건으로 발전했다.

순조는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었고, 결국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대신 세력이 반란을 진압했다. 초반에 기세좋게 청천강 이북 8군을 점령했던 반군은 박천 송림에서 관군에게 패한 후 세력이 약해졌다. 이 과정에서 관군은 지역 농민들에 대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면서 민심이 악화됐다.

관군의 핍박을 피해온 농민들은 정주성에서 홍경래의 반란군과 합세해 관군에 대항했다. 농민들은 정주성에서 100일 동안 항전했지만 화약을 동원한 관군에게 성이 파괴되면서 진압됐다. 당시 2983명이 체포돼 여자와 어린 아이를 제외한 1917명이 처형됐다. 권력자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반란 정도로 취급했다.

'홍경래의 난'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내세운 봉기의 이념은 세상을 구원할 정진인(鄭眞人)을 받들어 사업을 벌인다는 참위설이 가장 중요한 몫을 했다. 토호 관속을 향해서는 지역 차별과 정치적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상을 구원할 정진인(鄭眞人)은 정씨 성을 가진 참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조선 민간에 나돌던 도참서 정감록은 조선왕조에 있어 불온한 서적이자 사상이었다. 조선 건국을 끝까지 반대했던 정몽주, 조선을 창업했지만 조선왕실과 각을 세웠던 정도전, 만민평등 사상을 주장했던 정여립의 사례 때문에 조선왕조는 정감록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홍경래의 난 또한 정감록에 바탕을 둔 이념을 내세운 사건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과 홍라온은 이씨 왕조의 가장 중요한 일원과 정감록 사상을 받드는 지도자의 후손이 만난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실제로 그랬다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사건이다.

홍라온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인 홍경래가 조선왕조에 맞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세자 이영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유야 어찌됐건 세자 이영은 홍라온에게 있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들이다. 그리고 홍경래의 추종자들이 홍라온을 찾고 있다. 세자 이영과 홍라온 앞에 놓인 장애물은 한 두개가 아니다.

세자 이영은 홍라온의 정체를 알고도 그와 함께하겠다고 했다. 홍라온도 세자 이영을 택했다. 과연 왕세자의 신분으로 왕조를 부정하는 세력의 후손과 맺어질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어찌됐든 효명세자는 왕실의 권위를 회복해 안동 김씨 세력을 약화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화사한 분위기와는 달리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또한 진짜 헬조선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 효명세자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쳐]

 

여창용 기자 hblood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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