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덕혜옹주’-‘귀향’,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아픔

기사 등록 2016-08-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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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양지연기자]잔혹한 시대였다. 영토와 물자, 나라와 이름까지 모두 뺏긴 민족의 시대는 아픔이었다. 그런 역사를 겪은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는 언제 떠올려도 애통하다.

누군가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승리한 남자의 기록이다. 잔혹한 시대 속, 패배한 나라가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하고 송두리째 휘둘릴 때 그 나라 여성의 삶은 특히 비참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을 다룬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담은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 속 두 주인공 덕혜와 정민의 삶이 그러했다. 이들은 암울한 시대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나마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비록 두 주인공의 신분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족 안에서 누구보다 귀한 취급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의 인생에 감당할 수 없지만 감당해야만 하는 시련이 닥친다. 덕혜는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정민은 일본군 주둔지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덕혜와 정민은 남자들의 권력 아래 휘둘린다. 바람 앞의 촛불 같던 나라의 운명 속 두 여성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도 맘대로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할뿐더러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해야 했다.

그 삶을 바라보다보면 가슴 한 구석에 바위가 내려앉는 것 같다. 영화는 이미 지나간, 되돌릴 수 없는 실제 누군가의 삶을 조명하며 관객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함을 안긴다. 덕혜가 자신을 돕는 김정한의 고통을 바라볼 때, 정민이 총성 하나에 쓰러지는 친구들을 볼 때 마음이 이랬을까.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덕혜는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나마 고국의 땅을 밟게 되고, 정민은 본인의 희생으로 또 다른 여인의 삶을 이어나가게 한다. 암울했던 시대에 태어난 죄로 많은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은 본인들의 삶 그 자체로써 의지를 전한다.


비극적인 삶 속 한 줄기 피어난 의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던 것은 두 영화의 연출 덕분이었다. ‘덕혜옹주’와 ‘귀향’은 민족심으로 뭉뚱그려진 영화가 아니라 시대의 비극 속 여성 개인의 인생에 초점을 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결코 ‘승자’가 되지 못했던 둘의 삶은 무수히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두 영화를 보고나니 김수영의 ‘풀’이 생각난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시는 아니지만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을 다루기 때문이다. 시에서 풀은 민족이다.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여성이다. 바람에 의해 눕고 또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이렇게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의지는 남아 전해진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와우픽쳐스 제공)

 

양지연기자 jy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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