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명화를 통해 지혜로움을 얻는다

기사 등록 2011-09-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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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르브뢰겔(PieterBruegel),어린이들의놀이(Children's games),1560년,오크 패널에 유화, 118 X 161cm,빈 미술사 박물관.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브뢰겔의 그림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인식되는 '네덜란드 속담' 을 비롯해서 '사육제와 사순절 사이의 싸움', '야외에서의 혼례 춤' 같이 중세 마을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마도 무려 250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려낸 '어린이들의 놀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들의 놀이'처럼 무수히 많은 인물을 등장시킨 그림은 미술사에서도 유례가 드물다고 합니다. 흡사 수십 점의 그림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요즘처럼 특별한 장난감 없이 굴렁쇠, 술통, 나뭇조각 등을 이용해 놀고 있으며, 노는유형도 말뚝 박기, 뛰어넘기, 뒷꼬리 잡기 등 매우 단순한 편입니다.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브뢰겔의 작품들은 대개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서로 뒤얽히면서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방대하면서도 세밀하고, 코믹하면서도 활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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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르 브뢰겔 '네널란드속담'

'네덜란드 속담' 처럼 많은 사람을 등장시킨 여타의 브뢰겔의 그림들처럼 '어린이들의 놀이'도 멀리서 보면 활력이 넘치지만, 조금만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뒤죽박죽 질서가 없고 혼란스럽습니다. 인물들도 대개 투박하고 멍청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브뢰겔의 보는 서민들의 일상은 정돈된 일상이 아니라 두서 없고 무질서한 일상이라 해도 과언 아닙니다.

브뢰겔은 귀족이나 지배층이 아닌 서민들을 중심으로 작품에 시대의 생활상을 담아내고 있는게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농부나 수공업자 등 피지배 계층을 다수 등장시켜 그들의 고단한 삶을 코믹하게 그려냄으로서 서민들의 일상을 희화화시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어느 작품이든 브뢰겔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초상화 모델처럼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마을 사람들이 등장해서 각자 분주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게 또한 특징입니다. 비록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 서민들을 옭아매는 인습의 중세 사회지만 마을 사람들은 힘들고 고단한 일상임에도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어린이의 놀이'나 '네덜란드 속담' 같은 중세 마을을 다룬 브뢰겔의 풍속화들은 항상 군중들로 북적거리며, 그리 높지 않지만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희화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탓에 마을은 하나의 연극 무대 같고, 인물들은 흡사 무대 위의 배우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이의 놀이'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실은 어린이 역을 맡은 코믹 배우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또 한가지 이채로운 사실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제목처럼 어린이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무질서하게 제멋대로 노는 모습은 어린이되, 얼굴이나 체격은 어린이라기 보다는 어른에 가깝습니다. 단조롭고 유치한 놀이를 즐기는 모습만 어린이 같은 뿐,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건 아이가 아닌 성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놀이를 채집한 민속의 기록이 아니라 ' 아이들처럼 유치한 놀이로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충고' 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단순하고 조잡한 놀이를 통해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서민들의 삶을 풍자한 것으로읽히고 있습니다. 즉 소재는 어린이의 놀이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박정은 pyk7302@m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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