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환의 영화 초이스]'날, 보러와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기사 등록 2016-03-3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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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소준환기자]철학사에서 주로 다뤄 온 개념 중엔 ‘광기’가 있다. ‘광기’는 말 그대로 정상이 아닌 미친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창조성의 영역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광기’를 두고 정신병리로서 보는 입장은 이를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예술의 근간으로 보는 시각은 이를 기발함과 창의력의 원천으로 사유하기에 그렇다. ‘광기’는 과연 정신병과 창조성 중 어느 지점일까.
영화 ‘날, 보러와요(감독 이철하)’는 사설 정신병원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 인간의 ‘광기’와 ‘섬뜩함’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광인과 투지의 모호함을 다루는 바 ‘광기’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던 사람도 정신병원에 갇히는 순간 ‘정신병 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그렇다.
영화 속 나남수 PD(이상윤)는 인기 PD에서 조작 방송을 한 PD로 나락에 떨어지자 복귀를 위해 ‘정신병원 화재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나 PD는 강수아(강예원)가 강병주 살인사건의 피의자란 사실을 알고 교도소를 찾아간다. 강수아를 취재해 강병주와 그의 고교 후배인 정신병원 장원장(최진호) 사이에 담긴 비리를 폭로하려고 하는 것.
‘날, 보러와요’의 이야기는 대부분 강수아가 사설 정신병원에서 겪은 체험담의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곳에 사람들은 강수아처럼 납치됐거나 가족들의 동의 및 포기로 인해 갇혔다. 이 대목은 미셀 푸코의 유명한 저서 ‘광기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푸코에 따르면 17~18세기에 구빈원이 대대적으로 만들어져 광인들은 부랑자, 빈민, 범죄자와 함께 도덕적인 죄악을 뒤집어쓰고 감금된다. 그러나 '인간'의 이름으로 행해진 진단이나 치료는 광기의 비밀을 알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광인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정상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관찰과 조처였다. 이로써 광기는 감시와 치료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이성의 담지자만이 정신의학의 용어를 빌어 광기와 광인에 대해 말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극중 장원장 역시 강수아를 비롯한 구성원들에게 감금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 속 사설 정신병원의 의료진들은 이들의 ‘정상과 비정상’ 여부에 관심이 없다. 그저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강요할 뿐이다. 더군다나 이들의 행보에는 ‘탐욕’이 담겨있다. 애초의 치료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며 부의 측적과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병원이 운행되기 때문이다.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섬뜩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터 .
무엇보다 ‘날. 보러와요’는 추적과 관찰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확보하고 있다. 강수아와 얽힌 사건들을 취재해 방송을 내보내야 하는 나PD의 고군분투는 긴박감과 리얼함을 배가시키기에 그렇다. 카메라 워크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극의 감정을 따라 움직이면서 한층 더 서스펜스를 끌어 올렸다. 주요 인물들을 열연한 이상윤, 강예원, 최진호의 출중한 표현력은 극을 관통하고 있는 스릴러적 강점과 ‘광기’에 대한 뉘앙스를 압도적으로 증폭케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남은 질문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또 광기는 치료의 대상인가 아니면 창조성의 원천인가. 확실한 건, ‘누군가가 누군가를 분명하게 미쳤다’고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치료는 도움의 영역이지 개조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에 뜯어지고 강제될 수 없는 것. 뿐만 아니라 강렬한 의지가 넘치는 사람도 관점에 따라선 미쳤다고 오인될 수 있기에 그렇다.
'지옥도 아닌 세상도 아닌 공간’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강수아의 광기어린 의지와 본능을 미쳤다고만 볼 수 없듯이, 자신의 범행에 일말의 죄책감도 못 느끼는 탐욕적인 장원장 역시 그저 미쳤다고만 단정질 순 없다. 그보단 ‘범죄'와 '광기’의 영역이 다르다고 사유하는 것이 좋은 접근일 것이다. 범죄의 판단 기준이 옳고 그름이라면 광기의 판단 기준은 정도와 밀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원장은 법적으로 엄청나게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맞으나 차분함과 신중함을 갖췄기에 광인으로 해석되기 애매한 것처럼.
이처럼 '날, 보러와요'는 사설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스릴러의 특색과 철학적인 의문을 동시에 내비치고 있다. 영화의 흥미로운 전개와 참신한 소재는 극의 몰입을 높이고 있기에 주목할 만하다. 특히 '광기'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 역시 관객 스스로 사유해보길 추천해본다. 그렇다고 '날, 보러와요'가 심도 깊은 예술영화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이 영화는 스릴러에 충실한 상업영화가 맞다. 다만 우리의 질문엔 제약이 없으므로 필자가 던진 화두를 한번쯤 사유해본다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제목이 '날, 보러와요'일 수 있다는 첨언과 함께. 4월 7일 개봉.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소준환기자 akaso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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