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연의 영화이야기]인물의 감정보다 관계가 더 흥미로운 영화 '아가씨'

기사 등록 2016-06-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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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김성연기자]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아가씨와 하녀, 백작 그리고 후견인까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네 사람의 관계를 그녀내는데 144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 과정에서 '아가씨'는 이야기 전개에 금기시 되는 회상 장면의 사용 또한 서슴치 않는다. 물론 그런 모든 회상 장면들은 박찬욱 감독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아졌다. 그만큼 '아가씨'는 할 이야기가 많고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한 편의 영화가 3부로 나뉘어져 있는 '아가씨'는 1부에서 하녀 숙희(김태리 분)가 화자로 진행된다. 2부에서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지만 '시체'같이 차가운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가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앞서 1부에서 숙희를 통해 보여준 이야기를 아가씨의 관점에서 비틀어 보여주는 식이다.

3부에 이르러서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포괄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퍼즐 조각을 찾아 끼워 맞춘 만족감이 들기도 한다.

'아가씨'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네 사람이 속고 속이는 관계다. 인물들 모두가 자신의 본심을 감춘 채 거짓말을 한다. 히데코의 이야기까지 보고나면 극중 주변 인물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됐던 사람이 알고보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아가씨'를 보고 나서 마치 한편의 '잘빠진' 케이퍼 무비를 본 것 같다는 관람평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이런 거미줄 같은 촘촘한 관계들을 풀어내려 하다보니 너무 설명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못내 아쉽다.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까지도 대사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되다보니 애틋함도 줄어든 것이다. 모호함은 줄었지만 그만큼 감흥도 덜했다. 후견인 코우즈키와 사사키 부인(김해숙 분)의 사연만 해도 대사 한 줄로 읊조리 듯이 흘러가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아가씨'의 어느 인물보다도 흥미로운데 말이다.

'아가씨'에서 가장 흥미롭게 그려진 관계는 아무래도 아가씨와 하녀의 관계다. 두 사람은 호기심에서 시작했다가 동경과 이해의 대상을 넘어 사랑에까지 이르게 된다.

퀴어 멜로물의 외피를 입고 있는 '아가씨'에서 특별했던 점이 있다면 아가씨와 하녀가 나누는 사랑의 장벽에 두 사람의 성이 같단 사실은 논외로 쳐졌단 것. 두 사람을 사랑하는데 놓여진 장애물들은 신분이나 살아온 환경(이마저도 나중에는 연민의 감정을 불러 두 사람을 더 끈끈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가씨'의 두 남성 캐릭터일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앞서 "이성간에 사랑이나 동성간에 사랑이나 똑같다고 본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랬기 때문일까. '아가씨'에서 그려진 동성애는 한국 대중문화에서 그려내고 있던 동성애자들의 선입견들이 다소 배제돼 있기도 했다.

'아가씨'에 나온 레즈비언 커플을 보고 누가 남성 역할인지 여성 역할인지를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코우즈키의 저택을 도망치는 장면에서도 담벼락이 높아 망설이는 아가씨를 도와 숙희가 마치 남성처럼(어쩌면 이 또한 남성적이다란 편견일 수도 있지만) 짐가방을 눕혀 계단을 만들어 도왔다면, 여권을 위조해 도망칠 때는 히데코가 남자로 분장해 과거를 청산하려고 떠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각별하게 다가왔다.

'아가씨'에 나오는 두 번의 정사 장면 또한 김민희와 김태리가 동등한 위치에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로 나누어 서로 유희를 즐긴다. 그 자체로도 강렬한 비주얼을 선사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한 단면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금기시 돼온 동성애 소재를, 이렇게 편견 없이 만들어서 찾아온 박찬욱 감독이 반갑기만 하다.

 

김성연기자 sean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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