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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의 영화가 사랑한 사진] 8월의 크리스마스(Christmas In August)

기사 등록 2011-08-2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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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김석원 위원] - 사진이 둘러싼 일상 -
1998년 허진호 감독은 자신의 시나리오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가지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그는 이 한편의 영화로 1990년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극찬을 받았다.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서울의 변두리, 나이든 아버지(신구 분)로부터 사진관을 물려받게 된 정원(한석규 분)은 그곳에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겪는다. 중학생 꼬마 녀석들이 여학교 단체 사진을 가져와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을 확대해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 소란스러움이, 머리가 다른 사람보다 큰 여자가 자신이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자꾸만 가리려고 하고, 젊은 시절 사진을 가지고 와서 복원 해 가는 아주머니의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혼자 찾아와서 예쁘게 자신의 모습을 꾸민 후 영정 사진을 찍는 눈물나는 사연들이 있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동안 정원은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었고 이제 겨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정원의 곁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역할까지 맡아 반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이따금 집에 오는 결혼한 여동생 정숙(오지혜 분)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림(심은하 분)이라는 아가씨가 나타나는데, 그녀는 정원의 사진관 근처 도로에서 주차 단속을 하는 아가씨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사진관 앞을 지나고, 단속한 차량의 사진을 맡기는 다림은 차츰 정원의 일상이 되어간다.

정원은 죽어가는 자신과는 달리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다림에게서 초여름 과일같은 풋풋함을 느낀다. 그녀가 정원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그녀는 정원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정원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림이 사진관에 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정원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 가고, 이제는 살고 싶어지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에 다림을 보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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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상태를 모르는 다림은 문 닫힌 사진관 앞을 몇 번이고 서성거린다. 기다리다 못한 다림은 편지를 써서 사진관의 닫힌 문틈에 억지로 구겨 넣지만 사진관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서 다림도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서 더 이상 사진관에 나타나지 않는다. 정원은 다림을 만나러 근무지로 가지만 창가가 있는 카페에 앉아 유리창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림의 동선을 안타까운 듯 손가락으로 그리며 지켜보기만 하다 돌아온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정원은 자신의 사진관에서 홀로 영정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림이 사진관을 찾아온다. 사진관은 ‘출장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문이 닫혀있다. 사진관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다림의 시선이 한곳에 머무는데, 그의 죽음을 모르는 듯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떠나는 다림의 뒤로 사진관의 진열장엔 세상에서 가장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흑백 사진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다.

사진이 둘러싼 일상
이 영화가 나에게 흥미를 끄는 것은 정원이 단순하게 사진을 찍어서 돈을 벌고 생활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사진이 그의 삶과 일상을 지배하고 둘러싸는 요소로 작용을 한다는 데 있다. 그러한 단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서 살펴보면,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다림을 처음으로 사진을 찍는날 그는 4×5 카메라의 홀더(holder)를 끼우다가 실수를 한다. 그 바람에 다림은 그의 실수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고 그 웃음은 그대로 사진으로 재현된다.

단순하게 고객과 주인의 입장에서 만난 사이였지만 그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며, 그런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카메라의 도구를 통해서 전이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죽기 얼마 전 마지막으로 만난 동창생들과 야외에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자신의 사진관으로 가서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이런 행위는 죽기 전에 자신이 지상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고자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런 그의 태도는 오래전에 만났던 여자친구 지원의 사진을 책갈피에 꽂아놓고 지나간 추억을 간직하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사진은 아마도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셀프 포츠레이트(Self Portrait)’일 것이다.

그는 사진관에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 후 ‘셀프타이머(Self Timer)’를 작동시킨 다음 자신의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치고 의자에 앉아서 셀프타이머의 기계음에 주의를 하다가 그 소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환하고 밝게 웃는다.

그 사진은 그가 죽은 후에 ‘영정 사진’으로 쓰인다. 그의 이런 행위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 할머니가 늦은 밤에 홀로 찾아와서 영정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과 일치한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기 전에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고친 후 이렇게 말한다. “나 사진 잘 찍어 줘야해. 저 세상에 올릴 사진이야.” 라고 말한다. 정원은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 드린다. 할머니에게 그는 “안경을 벗으시고 환하게 웃으세요.”라고 주문을 하고 할머니는 그에 대한 답례로 밝게 웃는다. 이 장면은 주인공이 남에 대한 배려가 많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진관에서 하는 서비스의 한 부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 지는 얄팍한 상술이 여기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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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미로 생각을 해보면, 영정사진은 증명사진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찍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사진 속의 표정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무표정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이런 형식을 취하지 않고 웃고 찍었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 이유는 자신은 죽었지만 본인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례식 때 와서 사진을 볼 때 자신의 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사진은 그가 죽기 전에 다림을 찍은 흑백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그의 사진관의 진열장에 넣어둔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보여준 하나의 좋은 예로 보인다. 사랑하는 것은 눈으로 보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찍은 사진에서는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그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찍어 줄 때 가장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가들이 사진사들보다 기술적, 감각적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 혹은 야박하게,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를 가장 예쁘고, 아름답게 찍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이며, 사랑하는 연인을 가장 예쁘게 잘 찍어줄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사진가들이 아니라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사진을 찍는 기술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정원이 불치의 병으로 죽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는 죽기 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사진을 찍을 수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찍고 싶어도 그런 대상이 없거나 혹은 사진을 찍을만한 여건이 되지 않아서 찍어주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라면 어떤 심정이 들까 생각해 본다.

김석원 (문화 평론가/ 미디어 아트 박사,ksw505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