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기사 등록 2011-11-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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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미술객원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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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벌거벗은 마하],캔버스에 유화,1800년경,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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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을 입은 마하],캔버스에 유화,1800년경,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위의 두 작품은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마하의 두 얼굴입니다. 마하의 두 얼굴에 대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중 하나는 이 두 작품의 모델이 고야의 애인이었던 알바 공작부인이며 고야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나체를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는것입니다.그러나 두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던 알바공작이 갑자기 아틀리에로 찾아 올것을 대비하여서 실제로는 나체를 그리면서 보여지기위한 옷 입은 초상화를 그려야 했기 때문에 두 점의 작품이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그 당시 궁정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귀부인과 예술가의 이루어질수 없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금지시 되어있는 추악한 불륜이지만 당사자인 그들에게는 가슴 시리도록 아픈 사랑이야기로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두 작품은 모델의 얼굴은 물론 포즈에서 배경 캔버스의 크기까지 완전히 똑 같아서 '마하'가 옷을 입은 모습과 벗은 모습을 설명하기에 아주 그럴듯합니다.그러나 고야의 이 두 '마하'는 스페인어로 '멋진여자'라는 말로 공작부인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물론 알바 공작부인과 고야가 매우 은밀한 관계였다는것은 부정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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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캔버스에유화,1797년,뉴욕 아메리카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알바 공작부인의 두번째 초상화에서 검은 만틸라로 머리를 감싼 공작부인이 똑바로 서서 앞을 향한체 땅을 가리키는 부인의 오른손에 끼워진 두 개의 반지에는 '알바'라는 이름과 '고야'라는 이름이 각각 쓰여 있었으며 그녀가 가르키고 있는 모래땅위에는 마치 공작부인이 쓴것처럼 '오직 고야 한 사람만'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고야가 줄곧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주문에 의한 초상화가 아니라 고야 자기 자신이 알바 공작부인을 그림으로라도 매일 옆에 두고 보고 싶어서 그렸던 것으로 두사람의 관계가 아주 각별했던 사이 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두 '마하'가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가설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더구나 알바공작을 속이기 위해서 '벌거벗은 마하'를 그리면서 '옷을 입은 마하'를 그렸다는것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두점의 '마하'가 그려진 시기에는 이미 알바공작은 세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하' 이 작품에 대해서 근거가 되는 신뢰될만한 자료는 없다는 것입니다.다만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가 처음 기록에 나타난것은 1808년 '평화의 공자'라 불리던 당시의 재상 '고도이'의 소장품 목록에서 입니다.두 점의 '마하'는 아마도 '고도이'저택 벽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되어졌던것으로 나폴레옹이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 스페인 정치의 실권을 쥐고 있던 국왕의 충신 '고도이'였습니다. 고도이는 기분에 따라 같은 장소에 두 그림을 번갈아 진열 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이 두 작품은 언제나 한쌍 이었던 것입니다.카톨릭의 가르침이 매우 강했던 스페인에서는 그때까지 여성의 나체화는 거의 그려진적이 없었습니다.고야의 '마하'이전에는 벨라카스의 '가로누운 비너스'가 거의 유일한 작품 이었으며 이 작품은 신화속의 여신을 그렸던것이지 인간의 벗은 몸을 표현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야의 '마하'는 뚜렷하게 인간의 모습을 그렸으며 그것도 옷을 입은 모습과 벗은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게 큰 의미를 갖게합니다.신화속의 여신처럼 처음부터 벗고 있었던것이 아니라 '마하'의 그림속 그녀는 벗겨진것입니다.두 그림을 어떻게 전시하든 우리는 옷을 입은 그녀를 보아도 벗겨진 그녀를 떠오를 수 밖에 없으며 옷을 벗고 있는 그녀를 보아도 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19세기 절반이 지난후에도 마네의 '올랭피아'가 인간의 나체를 그렸다고 비난과 경멸을 받은것을 생각하면 고야의 이 나부상은 아주 대범한 시도 였습니다.'옷을 입은 마하'와 '벌거벗은 마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서정시인의 눈이 아니라 엄격한 인생의 관찰자 눈으로 그려 졌으며 바로 그의 그런 시점으로 인해 그는 근대 선구자의 한 사람이 될수 있었습니다.

두 작품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것인지는 관객들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고야의 '벌거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양면이 있으며 지금 눈앞에 보여지는 모습이 결코 다가 아님을 그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모습 또한 인정해주고 받아 들이는 지혜로움과 현명함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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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스페인의 대표적인 주제로, 고야는 벽화, 유화, 소묘로 무수한 마하 상을 남겼다. 동일 인물을 착의와 누드로 그린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다같이 프라도 미술관)는,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함께 고도이(Manuel de Godoy y Alvarezde Faria)의 재산목록(1808)에는 『집시의 여자』로 기재되어 있었다. 인상파적인 착의상에 비해서 세밀한 묘법의 나체는 근대적인 나부의 선구로서 유명하다. 제작년도는 1798~1805년 사이로 다소 논쟁이 있고 모델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일화가 있다.

 

박정은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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