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게 편지를]To. ‘곡성’ -너가 던진 미끼 편-

기사 등록 2016-06-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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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소준환기자]우리는 편지가 드문 시대에 살고 있다. 메신저와 스마트기기에 발달로 유익한 점이 수없이 많아졌지만 딱 그만큼 정성이 담긴 인사와 안부, 애틋함이 깃든 글귀와 메시지가 적어진 것도 사실. 이같은 상황 속 편지 형식의 영화평을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재미있는 만남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생과 영화는 자주 비유된다. 그렇다면 영화에게 편지를 보내보자. 진심을 다해 속마음을 적어봤던 오래 전 기억처럼. 호기심이 가득했던 러브레터처럼. 첫 번째 편지의 주인공은 ‘곡성’이다. 이 작품은 관객스코어를 비롯해 파급력 차원에서도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인 만큼 더 허심탄회 써내려가겠다.



To. 곡성에게

700만 정도의 관객들이 네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도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모호해서 그토록 몰입했을까. 너를 만든 나홍진 감독은 열린 결말을 선물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내 친구는 한 식당에서 3시간 동안 너에 대한 해석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나에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도대체 뭣이 중헌디!”. 나는 친구에게 진중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알겠으니까 제발 계산 좀 해! 집에 가서 쉬고 싶은디!”.

낚시꾼은 미끼를 물린 낚싯대를 바다에 던질 뿐 어떤 물고기가 물지는 모른다. 어쩌면 너는 관객을 향해 ‘메시지’라는 미끼가 물린 낚싯대를 던진 것일 수도 있다. 관객들은 대부분 어떤 영화를 보고나면 ‘그래서 이 작품의 메시지는 뭔데?’라는 자문자답을 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너는 ‘하나의 메시지’만으로 통합시킬 수 없는 다방면의 은유가 있다.



그 중 나는 무명(천우희)이 종구(곽도원)에게 던진 한 마디에 주목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무슨 죄가 있냐?’는 물음에 “딸의 애비가 죄를 지었다”고 답했던 장면. 내 친구도 그렇고 나 역시 그 의미심장한 대사를 곰씹어봤었다. 종구의 죄가 도대체 뭘까? 나는 그게 ‘미움’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인간의 ‘분노’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종구는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찾아가 자신의 딸을 건드렸다면서 극한의 증오를 보여줬으니까. 악은 바로 그 증오 자체를 먹고 자라는 무엇일 수도 있다는 해석.

그렇다면 흉흉한 세상의 한 단면도 ‘미움’에서 비롯됐다는 뜻이 될테고 반대로 악에 의해 찾아온 불행이 없으려면 ‘미움’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종구의 분노는 대부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나 느꼈을 자연스런 감정일 터. 그런데 너는 이 부분을 제대로 비틀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분노해서 죄를 저지르고는 죄 때문에 다시 분노한다는 것.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분노와 죄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는 화두. 섬뜩했다. 종구의 죄가 종구의 분노 때문이라면 선과 악은 결국 종구의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해석한 너는, 미끼를 문 물고기가 벗어나려고 퍼덕일수록 더욱 괴로워지는 것처럼 악의 세력이 던진 미끼를 문 인간은 구렁텅이 속으로 더 깊게 빠진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미끼를 문 물고기는 어떤 의문이 생겨도 발버둥치기에 정신없고 미끼를 문 이후 정신이 번쩍들 뿐이다. 그렇다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일까? 진짜먹이와 미끼 사이에서 헷갈리지 않는 '직관'일까? 미움이 미움을 확장시키는 것을 막으려는 '원수에 대한 사랑'일까? 너의 친절한 답장을 기다린다.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소준환기자 akaso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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