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데일리

[이슈기획]'사임당'은 현모양처가 아니다

기사 등록 2017-02-01 18:55

Copyright ⓒ Issuedaily. 즐겁고 신나고 유익한 뉴스, 이슈데일리(www.issuedaily.com) 무단 전재 배포금지

[이슈데일리 김지영기자] 우리 기억 속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조강지처, 율곡이이를 훌륭하게 키워낸 위대한 어머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임당과 실제 조선시대 사임당은 다르다. 조선시대 사임당 신씨의 삶을 재해석한 ‘사임당’이 지난 26일 첫 포문을 열었다.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극본 박은령 연출 윤상호 이하 ‘사임당’)의 박은령 작가는 지난달 24일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사임당 신씨는 역사에서 엄마로 기록돼 있지 않다”며 “조선의 워킹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방송된 1화에서 서지윤(이영애 분)은 남편의 잘못으로 집안에 압류딱지가 붙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한순간에 몰락했다. 역사 속 사임당의 남편 이원수 또한 경제개념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이의 ‘선비행장’에 따르면 “아버지(이원수)는 성품의 기개가 크고 호방하며 재산을 관리하는데 알지 못하였으므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고 기술돼 있다.

또한 사임당은 이원수의 외도로 7명의 자녀를 홀로 키웠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점에서 사임당은 조선시대 ‘워킹맘’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사임당은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아내로서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는 기록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역사 속 사임당은 다른 것일까.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현모양처는 우리 고유의 단어가 아니다. 이는 일본의 ‘양처현모’에서 비롯된 말로, 국가와 남편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여성상을 의미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국가통합을 위해 필요한 여성관이었으며 이를 신사임당에 씌워 회자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은 태평양전쟁에 조선인의 징병을 독려하기 위해 ‘군국의 어머니’라고 추켜세웠다. 또한 1970년대 박정희 장기 독재정권에서도 독재 합리화를 위한 성역화사업이 이뤄져 신사임당은 민족의 대표 인물이자 현모양처로 부각됐다.

서지윤(이영애 분)은 한국미술사학회장이자 지도교수인 민정학(최종환 분), 선갤러리의 관장(김미경 분)이 지켜보는 학술발표회에서 안견의 ‘금강산도’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대학원 후배인 한상현(양세종 분)이 “해당 그림이 진품이 맞냐”는 질문에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고백한 것. 이는 충분히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강직한 성품을 지녔음을 짐작케 했다.

사임당은 조선시대 여성 중 몇 안 되는 호를 가진 위인이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글자를 익히지 못했고 자연스레 호를 가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임당은 ‘최고의 여성상인 태임을 본 받는다’는 뜻으로 당호를 직접 지었다. 이는 당시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개척한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2화에서는 어린 사임당(박혜수 분)이 미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재능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시대에, 그것도 여성이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사임당은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7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세종에서 세조 때 까지 활약한 조선이 자랑하는 천재 화가 안견의 그림을 모방해 그렸으며 특히 풀벌레와 포도를 그리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신명호와 사임당의 외조부 이사온은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사임당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경서를 읽으면서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점들을 비춰 봤을 때 실제 사임당과 드라마 ‘사임당’ 속 서지윤·사임당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사임당’의 관계자 또한 “신사임당이라는 역사 속 위인을 길게 다루는 서사적 정통 사극”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임당’은 타임리프가 아닌 팽행 우주론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사용해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극 중 서지윤이 이사 간 동네에서 만난 거친 아줌마가 오죽헌 사임당에서 일하는 여종이 같은 인물이라는 점, 사임당의 일들을 내다봤던 서지윤이 현대의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 등이 근거다. 지금까지 단 2화만 방영된 상황, 시대극은 역사를 바탕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사실과 상상을 오가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사임당’을 접하는 시청자들은 역사적 진실과 픽션의 재미를 비교하는 것에도 남다른 의미를 둘 수 있다. 지난해 압도적인 흥행을 이끈 영화 ‘암살’ 역시 실화와 픽션의 적절한 조화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사임당’이 앞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그룹에이트, ㈜엠퍼러엔터테인먼트코리아, '사임당' 방송 캡쳐)

김지영기자 b33151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