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나르키소스의 금지된 사랑'을 아시나요?

기사 등록 2011-08-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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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월리엄 워터하우스(에코와 나르키소스),1903년,켄버스에 유채,영국 리버폴 워커 아트 캘러리.

[박정은 미술객원 전문기자] 여성보다도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청년 '나르키소스'. 그를 본 수많은 처녀들과 요정들은 누구나 그의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많은 여성과 요정들이 사랑을 고백해도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느끼지도,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타나토스' 를 부르는 자기애 (自己愛)와 슬픈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자기애'(自己愛) 라고 합니다. '나르키소스' 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단어로 자신의 육체를 이성의 육체로 보듯이, 스스로 만지고 보다듬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날 이었습니다. 한 요정이 '나르키소스'가 사냥 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물론 사랑에 빠져벼렸죠. 이 요정은 상대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도 입을 가만 놔 두지 않는 수다쟁이 '에코요정'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요정은 자신이 혼자는 말을 못하고 남의 말을 되받아서만 하는 '메아리'(에코) 였습니다. 처음부터 '에코'가 남의 말만 되받아서 했던 건 아니였습니다. 헤라여신이 바람둥이 제우스가 산자락에서 '숲의 요정'과 사랑을 나누는것을 보고 현장을 습격하러 왔는데 제우스는 이미 행방을 감춘 상태, '에코'한테 제우스가 어디로 갔느지 물어 봤는데, '에코' 가 수다를 떠는 사이에 '제우스' 는 숲의 요정과 함께 감쪽 같이 숨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화가난 '헤라' 가 '이제 너는 말을 하되 ,남의 말을 되받아서 한 마디씩 밖에는 할 수 없다.'며 저주를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에코' 는 첫눈에 반한 '나르키소스' 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할수 없었습니다. '나르키소스' 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도 고백하고, 또 말도 걸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는 '에코' 는 애가 타들어 갔습니다.

'에코'가 할수 있는 일은 '나르키소스' 가 사냥을 하며 외치는 말을 그것도 한마디씩 되받아 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한체 '에코' 의 마음은 주체 할수 없이 커져 갔고, 급기야 숲속에서 뛰쳐 나와 '나르키소스' 를 끌어 안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에코' 의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하였고 '나르키소스' 에게 사랑을 거절 당한 '에코' 는 실의에 빠져 여위어가다가 마침내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메아리' 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코'를 '메아리' 라고 하였습니다.( '메아리' 는 '메앓이' 라는 뜻으로 '메' 는 '산' 의 옛이름이고 '앓이'는 '몸이나 마음이 아파서 앓는다' 라는 뜻 입니다.)

'나르키소스'는 수많은 여성과 요정들에게 모욕감과 사랑의 상처를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아메이니아스' 는 사랑을 거절당하자 '나르키소스' 가 준 칼로 자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나르키소스'에게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또는 에코) 한 사람이 애절하게 빌었답니다. "저희가 '나르키소스'를 사랑했듯이, 그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처럼 이룰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이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 '나르키소스'도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해주세요"라고.. 이것을 람노스의 여신인 '복수의 화신 네메시스' 듣고 마침내 이를 들어주었습니다.

헨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갔습니다. 이때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은 '나르키소스'. 마침내 그 역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한발자욱도 떠나지 못한채 샘만 들여다 보면서 잡히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였습니다. 위의 그림은 이같은 이들의 상황을 절절히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나르키소스'를 지켜보는 어여쁜 요정 에코의 슬픈어린 눈빛이 그에게 계속 머물고 있으나, '나르키소스' 는 '에코' 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만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화가 '워터하우스'는 사실적이며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에코와 나르키소스'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에코' 와 '나르키소스'의 엇갈린 사랑과 그로인한 아픔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표현 하였습니다. '나르키소스' 는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의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자리에 한송이 꽃이 피어 났는데 그 꽃의 이름이 바로 '나르키소스' (수선화) 였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애 (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나르키소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랑의 기본은 자신을 사랑하는데서부터 나온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왜 '자신을 사랑한 나르키소스'는 죽음에 이르는 '금지된 사랑' 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외에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췬 자신의 모습외에 그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예쁜 꽃들과 바람, 나무, 하늘등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신을 그토록 갈망하며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어여쁜 에코'에게 조차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세상 그 어느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기 파멸'로 결국 주위의 모든것과 단절하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거울 앞에 한참동안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황홀한 듯 바라보는 것도 '나르시시즘' 에 한 예입니다. 흔히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왕자병' '공주병'을 말하는 것 인데, 이 병이 적당히 있으면 자신감이지만 이 병이 지나치면 자기애 (自己愛) 가 되어서 다른 그 누구와도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자신한테 가두어져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입니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자신과의 소통외에는 그 누구와도 교류 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운명의 짝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정말 어리석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물론 우리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데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서 주변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나르키소스' 처럼 '타나토스' 를 부르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먼저 생각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타인의 아픔을 보는데 익숙치 않습니다. '워터하우스' 의 '에코 와 나르키소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자신의 사랑하는 만큼 타인도 사랑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참된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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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월리엄 워터하우스 (1849ㅡ1917)

1849년 로마에서 출생,부모가 모두 미술가로서 활동. 로마에서 자라면서 이탈리아 미술의 세례를 받은 것은 이후 신화적 소재나 문학적인 알레고리 를 사용하는 그의 미술에 결정적인 자취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영국으로 돌아간 뒤에 부친의 작업실에서 미술을 공부하였고 1870년에 로얄 아카데미 에 입학. 빅토리아 시대의 의 대표적인 시인인 테니슨 (Alfred Tennyson)의 시와 호메로스 (Homeros)의 '일리야스' , '오디세이아' 에서 작품의 소재를 구하였습니다.

1891년 무렵 한 여인을 모델로 삼게 되었고, 이후 그의 주요한 작품에서 이 여인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의 작품은 고전주의적인 주제를 추구하면서도 이상적인 여인상을 추구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주는 키르케' (1891), '키르케 인비디오사' (1892), '힐라스와 님프들' (1896), '황금상자를 여는 프시케' (1903), '에코와 나르시스' (1903) 등이 있습니다.

 

박정은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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