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터널' 하정우 "제 먹방은 건빵의 별사탕 같은 거죠"
기사 등록 2016-08-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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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배우 하정우가 두 번째 재난 영화를 그렸다. 2013년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앵커 윤영화 역을 맡아 방송국 안에서 재난 상황을 독점 생중계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인물을 연기했다. 이번에는 ‘터널’(감독 김성훈)에서 직접 재난상황에 처한 인물 정수로 분했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던 정수는 대형 터널을 지나던 중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자를 연기하며 하정우는 영화 전반을 단독으로 이끌고 나간다. 그렇게 이번 작품에서도 하정우의 에너지는 영화를 가득 메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역시 사적인 하정우의 모습은 활기 넘쳤다.
“‘터널’을 처음 접하고 ‘더 테러 라이브’와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다른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실내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됐는데, ‘터널’은 새로운 공간이 중간 중간 펼쳐지기도 해서 또 다른 재미가 있겠더라고요.”
극 중 정수는 터널이 붕괴된 후 쇼크를 받지만, 대경(오달수 분)의 ‘일주일이면 나올 수 있다’는 말로 안정을 하게 된다. 희망의 한 마디를 가슴에 새기며 정수는 나름의 생존 방법을 터득해가고, 오히려 아내 세현(배두나 분)을 진정 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갈수록 최악으로 흘러간다.
“관객들을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유사 작품으로 ‘캐스트 어웨이’가 있겠네요. 탈출하기 전까지 톰 행크스가 유머러스하게 살아나가는 이야기가 정수와 닮았더라고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저렇게 밝아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보여주면 이야기의 아이러니함이 더 부각될 거라 생각했어요.”
“김성훈 감독님이 삶의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든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실은 더 말도 안 되는 사건들도 많고, 영화보다 심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잖아요. 정수 상황을 상상해 봤을 때 패닉을 겪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만약 저였으면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서 정신을 차릴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주인공 정수가 가진 것은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하지만 터널에 갇힌 지 하루, 이틀이 넘어 근 한 달이 다 되도록 구조대는 터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극한상황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성을 보존할 수 있을까. 특수한 상황을 연기하는 데는 확실히 특별한 연기력이 요구될 터다.
“‘더 테러 라이브’ 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터널’에서는 밖의 상황이 함께 보여지기 때문에 좀 더 편한 부분이 있었죠. 촬영 방식은 멀티 캠을 사용했어요. 정수가 있는 좁은 공간에 카메라들이 설치됐는데, 어두운 데서 촬영된 이유도 있어서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카메라가 보이지 않아 연기하는 데 몰입도가 굉장히 높아지더라고요. 혼자 연기하기 때문에 예민해질 수 있었는데, 집중력이 생길 수 있었어요. ‘아가씨’를 촬영하면서는 박찬욱 감독님이 촘촘히 계획을 해서 재단하듯이 진행됐는데, 이번에는 최대한 자유롭게 진행됐어요. 제가 연기하는 것에 따라 모든 상황이 다 말이 되더라고요. 떨어지는 돌 하나에 움찔해도요.(웃음) 아예 처음부터 감독님이 ‘즉흥연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어요. 그러다 보니 얻어걸린 장면도 많았죠. 코믹장면 대부분이 그렇게 완성됐어요.”
‘터널’은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연출에 나섰다. 전작 ‘끝까지 간다’로 유머와 풍자를 절묘하게 선보였던 감독이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장점이 잘 부각됐다. ‘터널’은 한 인물이 가장 최악의 상황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그 환경에 적응하려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를 완벽하게 연기해낸 하정우는 김성훈 감독과 일치하는 성향을 보유한 듯하다.
“시나리오는 작년 4월 쯤 받았어요. 일단 스토리가 재미있더라고요. 감독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터널’은 마냥 무겁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감독님도 그런 방향으로 각색하길 원했더라고요. 사람 자체가 재미있고 매력 있었어요. 이전에 감독님이 ‘아가씨’ 일본 촬영지에 놀러왔는데(웃음) 아침까지 술 먹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죠. 그 때의 기억이 좋아서 3박 4일 동안 오사카를 또 갔어요. 그 때 한창 시나리오 얘기를 나눴죠. 요즘에는 ‘신과 함께’ 촬영장에도 오시기도 해요. 감독님이 워낙 재미있다 보니 영화도 진짜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촬영하면서 일주일에 6회 차 되는 고된 촬영이었거든요. 쉬어가는 부분 없이 제 컷만 촬영하다보니 힘들 수도 있었는데,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느라 힘들지가 않았어요. 저는 감독님에게 장면 칭찬을, 감독님은 저한테 연기 칭찬을 해주며 서로 기운을 북돋아줬어요.”
감독과 주연 배우의 합만큼이나 출연진끼리의 믿음과 호흡도 영화에 긍정적인 결과로 작용했다. 극 중 정수는 터널 안에서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 그가 유일하게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휴대폰 전화를 통해서다. 정수는 세현, 대경이 전하는 위로와 격려의 목소리로 순간들을 견뎌낸다. 사회에서 순간 격리된 이에게 세현과 대경의 존재는 참으로 큰 버팀목 역할을 한다.
“연기는 배우들 끼리 진짜 통화를 연결해서 진행했어요. ‘더 테러 라이브’ 역시 그런 방식으로 촬영했는데, 김병훈 감독님과 김성훈 감독님이 친분이 있기도 해서 이전 저의 촬영 방식을 논하기도 했다더라고요. 달수 형과의 관계는 ‘암살’ 덕을 많이 본 것 같아요. 7개월을 함께 했었는데, 비록 떨어져서 촬영했지만 가깝게 느껴졌던 형이에요. 두나 씨는 첫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룹 리딩 후 농담을 주고받는데, 사람이 뭔가 열려있더라고요. 제 코미디도 이해하고.(웃음) 두나 씨는 제 촬영장에 와서 직접 터널 안에 들어가 보기도 했고, 연기 전에 감정을 잡기 위해 직접 전화를 하기도 했어요.”
이번 영화에서 역시 ‘하정우표 먹방’이 눈길을 끈다. “스토리에 잘 어울리지 않으면 오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신을 찍기 전에 계산을 많이 해서 배치했죠. 재미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제 먹방은 건빵의 별사탕 같은 거죠.”라고 ‘터널’부터 최근 필모그래피에서 선보여진 ‘먹방’을 논했다.
하지만 하정우, 그리고 하정우가 참여하는 작품들이 매번 화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먹방의 임팩트 때문은 아니다. 연기 연습을 위해 대본에 빼곡히 체크를 한 하정우의 사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흔적이 남아야 진짜 연기냐 하면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직관적으로 그의 연기를 감상해도 관객들의 심금은 충분히 울린다.
“제 연기가 우리가 생각했던 계획대로 관객들에게 전해질까 의심은 하죠. 혼자 연기하다 보니 그게 더 크더라고요. 상대배우가 있으면 조율을 맞춰갈 수 있는데 말이죠. 감독님과 처음부터 그래프를 그렸어요. 큰 사건을 포인트로 두고 감정의 고저를 그렸어요. 순서대로 찍으면서 그걸 기준으로 연기했죠. 감독님이 그런 부분이 굉장히 치밀해요. 안 그럴 것 같은데 되게 디테일하고 아날로그적이에요. 저도 덩달아 그렇게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늘 하는 고민이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까를 아직도 고민해요. 놀랍게도 좀 더 나은 표현을 어떻게 연기할 지 계속 고민해요. 경력이 쌓이고 작품 수가 쌓이면 캐릭터를 바라보는 해석이 능숙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더 어렵더라고요.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거칠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캐릭터를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이슈데일리 한동규 기자)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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