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아듀! '뿌리깊은 나무', 어떻게 봐야할까?

기사 등록 2011-12-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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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박혜정기자]01.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어느덧 종착역

집현전 학사들에 대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스테리 역사극 SBS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이제 한글 반포 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드라마는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인 문자 창제를 중심으로 밀본의 은밀한 세력화와 강채윤의 사사로운 복수심 등 여러 갈래로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다 강채윤이 복수심을 버리고 세종의 믿음직한 수하로 거듭나고, 반촌의 백정인 가리온이 밀본의 수장 정기준으로 드러난데다, 소이가 훈민정음 해례 그 자체임이 밝혀지는 등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치열하고 긴박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접어들면서 한글 반포를 둘러싼 세종 측과 밀본 세력의 필사적인 대결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한글을 유포하려는 세종과 필사적으로 그것을 저지하려는 정기준의 사생결단식 대립으로 드라마의 구도가 단순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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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실제 역사와 드라마 상의 한글 반포 반대 이유

실제 역사에서 한글 반포에 극렬하게 반대한 세력은 최만리를 비롯한 일부 집현전 학자들이었습니다.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한글 창제사실이 자칫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고, 별도의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가 되려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두가 존재함에도 굳이 또다른 언문을 만드는 것은 실용성도 없다는 이유가 더해집니다.

얼핏 최만리의 주장은 주체성 없는 대명 사대주의에 불과한 듯 보이지만, 대명 외교를 국제관계의 축으로, 성리학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은 조선의 입장에선 이 같은 주장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명나라와의 강대국 동맹노선을 대외관계의 기조로 채택한 조선이 중국과 다른 문자를 창안한다는 것은 자칫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야기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한자와 다른 문자를 만들겠다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밀본의 수장 정기준의 한글 반포 반대는 이런 최만리의 외교적 분쟁과 마찰까지 염두에 둔 현실주의적 반대가 아닙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으로 정체가 밝혀지면서 세종과 정기준이 벌인 끝장 토론이나 이후의 전개 과정을 보면 정기준이 단순히 글자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기준은 목숨을 걸고 한글의 유포를 반대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글자의 유포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 왕권 중심적인 체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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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세종과 정기준의 갈등과 논쟁

정기준의 밀본은 원래 성리학만이 절대 진리라는 이념 하에 그 성리학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존재로 사대부를 들고 있습니다. 결국 사대부 없이는 성리학도,조선도 없다는 논리인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엘리트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논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세종이 한글을 만들면서 이제 논의의 중심은 사대부 중심주의나 재상총재제 같은 일종의 체제 논쟁에서 백성의 문자 사용을 둘러싼 이해득실 논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세종과 최만리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논쟁이 아니라 백성이 문자를 습득할 때 발생할지도 모를상황을 놓고 벌이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세종은 한글 창제의 동기이자 필요성으로 실용성과 소통의 확대를 들고 있는데, 드라마에서 세종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논리로 쉬운 글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정기준은 글자를 사용하게 될 백성의 힘을 과대평가한데다 언문의 실용성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한글의 민간 유포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새로운 글자에 반대하는 것이 결국 기득권 때문 아니냐는 세종의 질타에 정기준은 성리학적 체제로 구축된 국가 내부의 조화와 질서, 균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기준이 내세운 조화와 균형이란 것도 결국 사대부 중심의 신분과 계층 질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정기준의 한글 반대는 어떤 논리를 내세우든 결국에는 사대부의 '기득권 수호'로 귀착될 수 밖에 없습니다.

04. 위민정치의 주체를 둘러싼 대립과 논쟁

따라서 한글의 사용층이 될 백성에 관한 세종과 정기준의 논쟁은 결국 백성을 놓고 벌인 논쟁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백성이 아닌 '위민정치의 주체'를 놓고벌인 논쟁입니다.

일찌기 삼봉 정도전은 사대부중심의 위민정치를 역설했는데 이제 세종은 한글을 반포하여 군왕과 백성간에 소통의 길을 활짝 열어놓으려 합니다.

위민정치의 주체가 사대부에서 군왕으로 옮겨가는 것은 사대부의 역할 축소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이는 사대부의 정치기반 마저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판단 때문에 정기준은 그토록 집요하고 극렬하게 한글의 민간 유포를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정기준은 군왕과 백성의 직접 소통은 반대합니다. 중간에서 소통의 역할은 반드시 사대부가 대리하여 소통과정을 사대부들이 주도적으로 관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세종과 정기준의 본격적인 대립과 갈등은 글자의 창제와 반포를 둘러싸 고 야기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논쟁은 단순히 백성이나 글자의 실용성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이끌고 지도해 나갈 진정한 주체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이른바 '위민정치의 주체' 논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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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임금과 백성 그 모두의 이야기

결국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실제 역사에선 존재하기 힘든 고난도 권력 다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한글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통을 중시하는 열린군주 세종의 소탈한 면모를 그려내기 위해 일개 겸사복이나 궁녀와도 동일한 눈높이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파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이라는 '한글'을 매개로 위로는 군왕으로부터 고위관료를 거쳐 아래로는 겸사복에서 궁녀, 노비에 이르기까지 드라마는 국가의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뿌리 깊은 나무' 는 소수의 권력자들 만의이야기가 아니라 임금에서 일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을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끌어올려 입체감 있는 드라마로 완성했다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밀본이라는 가상의 조직을 설정하여 한글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군왕의 강력한 적대 세력으로 그려내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 점도 드라마에 몰입도를 높이는 요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박혜정기자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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