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선의 영화 원정기]'부산행' 진짜 공포는 시험대에 오른 인간일까

기사 등록 2016-07-1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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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우연히 부산행에 오른 그들은 끝까지 부산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442km는 KTX로 약 2시간 40분. 빠르다면 빠를 수 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목숨이 위협받는다면 더욱.

평상시처럼 일에 치이며 삭막한 삶을 살던 때, 갑작스레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대한민국 긴급재난 경보령이 발령됐다. 석우(공유 분)가 늘 등한시했던 딸 수안(김수안 분)과 이제 막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가 싶던 순간이었다. 이는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의 도입부다.

영화는 초반부터 귓가를 자극하는 강렬한 음향효과로 예상을 뛰어넘는 극강의 공포감을 선사한다. 이어 곧바로는 주인공과 그 배경을 간결한 상황 설명과 빠른 흐름으로 전하며 금세 높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텐션은 영화의 중반과 말미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감독은 한 치의 긴장도 늦출 수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연출하며 등장인물들 개개의 특성을 단시간에, 안정감 있게 표현한다.

‘부산행’은 어쩌면 표면적으로는 단순 좀비 호러물로 비춰질 수 있다. 물론 석우와 일행을 위협하는 무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좀비의 특성을 지녔다. 동공이 뒤집어지며 허리와 사지가 뒤틀리고 달리는 속도 또한 인간을 훨씬 능가한다. 이러한 점에서 일단은 공포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진짜 공포는 좀비가 아닌 존재로부터 비롯된다.

부산행으로 달리는 KTX 안에서 무수한 인간들이 좀비(정체가 좀비인지는 스포하지 않겠다. 편의상 ‘좀비’라 칭하겠다)에게 쫓기며 밀실극이 펼쳐지는 와중에 다양한 인간군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 가운데는 사회생활에 찌들어 이익만 추구할 줄 아는 이기적이고 고압적인 인간, 과거에는 정의로웠던 인간, 희생정신을 불사하는 인간, 의외의 생명력을 끌고 가는 인간, 나약했던 인간 등 범위도 남과 여, 노와 소로 폭넓다. 이 좁은 공간에도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들이 속한 것이다.

누가 이들을 처음부터 정의로웠고 악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부산행’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처해졌을 때 얼마나 추악하게 혹은 선량하게 변모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용석(김의성 분)의 악랄함으로 과격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기차의 차장마저 정의를 져버리는 태도로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부산행’은 인간내면의 탐구도 다루면서 실감나는 액션을 통해 관객들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사로잡는다. 감독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차라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색적이게 활용할 줄 알았다. 한정적인 공간에 제약이 있었을 법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발상으로 영리하게 밀실극을 완성시켰다. 협소한 공간임에도 과격하면서 이동 폭이 큰 액션을 구사했다는 점은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의 성향이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진행을 살펴보면 초반에 인물들은 어딘지 무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해지자 이들의 얼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살기 속에 피어난 생기는 인간의 흥미로운 생존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무섭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참 잔인하다. ‘좀비’라는 존재는 어쩌면 정치적 인물들이 표현하고픈 서민들의 형상일까. 또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한 이들은 불쌍한 이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일찍이 계산해 놓은 듯하다.

이쯤 되니 뒷맛이 씁쓸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나의 자극만 느낄까 싶었던 ‘부산행’은 그렇게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로 기억된다. 오는 20일 개봉.


(사진=NEW)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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