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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재즈 음악과 어울리는 명화 '나른한 순간'!

기사 등록 2011-09-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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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화이트 알렉산더,나른한 순간 An Idle Moment, 1885년,유채, 66.04 X 86.36 cm.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그랜트 그린의 유명한 재즈 앨범 중 'Idle Moments'가 있는데, 동명 타이틀 곡인 'Idle Moments'의 그 처연한 기타음은 참으로 일품입니다. 이 곡은 제목 그대로 나른하고 처연한 연주가 짙은 고독을 느끼게 하는 그랜트 그린의 걸작입니다. 타이틀 곡인 'Idle Moments' 레코딩 중 자신의 연주에 도취된 그랜트 그린이 예정된 코러스 보다 훨씬 긴 솔로를 하게 되자, 다른 협연자들도 질세라 자기 파트 보다 몇배나 긴 솔로를 하게 되어 완성된 곡의 총 연주 시간이 무려 15분에 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곡이 소울 재즈의 걸작이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는데,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작품 중에도 이 곡과 이름이 같은 그림이 있습니다. '나른한 순간' 혹은 '한가한 순간'으로 잘 알려진 알렉산더의 이 작품은 검은 톤을 배경으로 우수에 젖은 듯한 여인을 등장시켜 사색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습니다.

여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른팔로 살며시 턱을 받쳐 놓은채 지긋이 감은 듯한 눈으로 어항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오른손에 반지를 끼고 있지만, 왠지 여인이 유부녀 같지는 않습니다. 흘러간 옛 추억을 되새기거나 옛 연인을 떠올리며 상념에 빠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경이 어두워서 그런지 그림 속 시간도 심야 시간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져있는 여인과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어항 속 금붕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나른한 순간'에 딱 어울리는 장면 같습니다. 여인이 주인공인 그림 답게 여인의 옆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오똑한 콧날에 반듯한 이목구비는 옆 모습만 봐도 상당히 미인일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가지런히 묶은 단아한 뒷 머리와 나른한 순간을 즐기려는 듯한 그 자연스런 포즈에선 이지적인 아름다움마저 엿보입니다.

이 그림은 얼핏 소박해 보이는 한 여인의 일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그럼에도 이 그림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고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습니다. 평범한 갈색 헤어스타일과 소박한 갈색 복장에다 특별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아도 여인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상념에 젖은 듯한 모습을 통해 매혹적인 자태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인을 둘러싼 그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는 심야의 재즈와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입니다. 심야에 듣는 재즈는 대개 낮은 톤에 멜러디컬한 연주와 로맨틱한 감성이 더해져 감미롭고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그림의 적막한 이미지와 그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입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Idle Moment'를 관통하는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랜트 그린의 곡이 짙은 고독을 느끼게 하듯,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그림에서도 여인의 알 수 없는 고독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랜트 그린의 곡이 가을과 잘 어울리듯, 알렉산더의 그림도 가을과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존 화이트 알렉산더는 당대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린 초상화가이자 잡지 삽화가로 상당한 명성을 누린 19세기 미국의 저명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는 휘슬러 처럼 여인을 소재로 한 것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휘슬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대개 화려하고 고급스런 패션으로 치장한 패션 모델같은 모습이어서 고혹스런 느낌을 줍니다. 휘슬러의 작품들은 한 편의 패션쇼를 연상하게 합니다.

반면에 알렉산더의 작품들은 일상의 평범한 여인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길게 늘어진 자세를 취한 것들이 많아 다소 신비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은 일상 속에서 여인의 순간적인 포즈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기에 그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삽화가이자 초상화가로써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풍부한 경험이 이렇듯 예술적 순발력과 감각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정은 pyk73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