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데뷔일기]미스터미스터 창재① "호기심 많고 책임감 강한 꼬마"

기사 등록 2013-07-2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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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김하진기자]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신인 아이돌그룹이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혹자는 '너무 많아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고들 하지만, 속속들이 살펴보면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고, 열정 역시 남다르다. 그들이 쏟은 노력과 음악을 향한 애정은 비례한다. 지난해는 특히나 더 많은 아이돌그룹이 쏟아졌다. 때문에 당시 데뷔한 그룹들은 하나 같이 데뷔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한 것이다.

미스터미스터(MR.MR)도 지난해 가요계에 입문한 남성 아이돌그룹 중 하나다. 리더 진을 필두로 태이, 류, 창재, 도연 등 5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2012년 10월 데뷔 싱글 음반 '후즈 댓 걸(Who`s That Girl)'로 첫 발을 뗐다. 이제 갓 데뷔 1년을 맞이하는 따끈따끈한 신예다.

노래와 춤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얻은 '가수'라는 꿈. 오랜 시간 데뷔를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렸다. 미스터미스터가 되기까지 멤버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핫데뷔일기'를 통해 들어보자.// 편집자주



미스터미스터의 '핫데뷔일기',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창재다.

본명 : 이창재
출생 : 1991년 11월 29일
고향 : 서울 신림동
태몽 : 백호가 어머니의 귀를 핥는 꿈.
형제관계 : 4살 터울의 여동생

창재의 태몽은 어머니가 직접 꾸신 꿈이다. 엄청 큰 백호가 어머니를 덮치며, 귀를 핥았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알았고, 창재가 탄생했다. 4살 터울의 여동생과 창재는 어릴 때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고3인 여동생이 공부를 하다 늦으면 데리러 가기도 하는 자상한 오빠다.



▶ 호기심 많은 꼬마, 왜죠?

어릴 때 울거나 떼쓰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별명은 '망치손'이었대요. 손 만 갖다 대면 모두 분해를 해서 물건을 많이 망가뜨려서요. 그리고 호기심이 정말 많았대요. '왜?'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엄마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차를 타고 가는 날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으셨대요.

어느 날은 엄마가 학습지를 찢으셨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문제를 풀면서 2더하기 2가 왜 4인지를 계속해서 물었다고 하셨어요. 하하. 잘은 생각나지 않지만 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보니 저는 귀찮은 아이었나 봐요.

밖에서 노는 걸 좋아했어요. 애기 때부터 집보다는 야외! 그래도 부모님이 저를 믿으셨는지, 자유롭게 밖에서 뛰어 놀게 하셨어요.



유치원 축제 같은 행사에선 진행을 맡기도 했어요. 남 앞에 서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였죠. 아빠께서 기계체조 선수도 하셨고 탁구, 양궁 선수도 하셨어요. 지금도 아빠와 팔씨름을 하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어요. 고3때 처음으로 이겨봤다니까요. 할아버지의 반대로 운동을 계속 하지 못하셨던 아빤 그래서인지 저에게 많은 운동을 가르쳐 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야구장 나들이도 많이 갔고요. 아빠와 뛰어 논 기억이 많아요.



▶ 아빠는 나의 우상

지난날을 더듬어 보면 아빠와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어요. 부모님과 친한 친구처럼 지냈고, 가족 분위기도 항상 화기애애했거든요.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건, 밤에 아빠 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으로 본 은하수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그 때 차에 네비게이션이 없었고 종이 지도를 보면서 가고 있었는데, 저의 말대로 아빠가 몰고 가셨어요. 어느 순간, 뒤에 차들이 우리를 따라오는 거예요. 뒤에 차들도 길을 잘 몰랐던지, 우리만 믿고 따라온 거였죠. 참혹한 건 우리 차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니었죠. 아마도 홍천 어디쯤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그 때 깨달은 사실! 저 엄청난 길치거든요. 하하. 다시 떠올려도 따라온 차 주인들께 죄송하네요.



가족들과의 여행도 그렇지만, 특히 아빠와는 같이 운동을 하면서 생긴 추억이 많아요. 그로인해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어렸을 때 저의 사진은 모두 아빠가 찍어주신 거예요. 집에 두꺼운 앨범이 8개나 있을 정도죠.



요즘엔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더도, 덜도 말고 아빠처럼 되고 싶어요. 표현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 '초딩' 창재의 키워드 셋

신림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까지 살았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때 봉천동으로 이사를 가게 됐죠. 청룡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당시에도 운동과 장난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4학년 때 부터는 라켓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라켓볼 센터에서 배웠는데, 이 역시 아빠의 권유였죠. 처음엔 아빠의 취미였는데, 저를 데리고 가신 거예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사실 아동 반은 따로 있었는데, 저는 일반인 반에 들어가서 성인 회원들과 같이 수업을 받았어요. 성인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을 잘 해낸다고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운동할 때는 특히나 승부욕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하하.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기도 했죠. 그 때 저의 꿈은 라켓볼을 대중화 시키는 거였어요.

동시에 학교 클럽 활동으로 풍물반에서 풍물놀이도 배웠어요. 초등부에서 꽤 유명해져서 6학년 때는 단장을 맡기도 했고요. 풍물부를 하면서도 추억이 진짜 많아요. 또 아람단 활동으로 국토 순례 경험도 했어요. 순례 당시, 담당 선생님께서 기수를 하라고 제안을 하셨고,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4학년 치고 키가 큰 편에 속하긴 했지만, 큰 깃발을 들고서 가장 앞장서서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승부욕이 여기서도 발동했죠. 무언가를 맡겨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책임감이 더 생겼고, 힘들지만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좋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정말 많은 활동을 하면서 즐겁게 보낸 것 같아요.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죠.

'왜?'를 입에 달고 다니던 꼬마 이창재는 아빠를 따라 운동을 했고, 우수한 실력도 인정받았다. 활발하고 책임감이 강해 국토 순례 때는 기수를 맡았고, 풍물부에선 단장으로 활약했다. 그야말로 알찬 6년을 보낸 그는 중학교로 진학, '춤'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지게 된다.

▶ '춤'을 알게 된 중학생 창재의 이야기는 '핫데뷔일기' ②편에서 계속.

 

김하진기자 hajin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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