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뿌리깊은 나무' 이것만 이해하면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기사 등록 2011-11-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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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박혜정기자] 지난 10월 5일 첫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이하 뿌나)는 첫방송 이후 부터 단번에 수,목극 1위자리를 차지하며 명품드라마로서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명품연기’를 펼치고 있는 세종역의 한석규를 비롯 복수심에 불타는 강채윤역의 장혁등 주,조연들의 저마다 특성있는 캐릭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가 극에 재미를 더해주며 15회에 접어든 지금까지 굳건히 1위를 자리를 지키고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KBS2 ‘공주의 남자’'(이하 공남)’에 익숙해져있던 시청자들은 ‘뿌나’가 ‘공남’처럼 ’퓨전사극’의 느낌보다는 사실에 근거한 역사극이어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입니다. 실제로 ‘뿌나’ 게시판에는 “처음부터 드라마를 안봐서 그런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공남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등 ‘뿌나’가 웰메이드 명품드라마임은 인정 하지만 극이 ‘공남’처럼 이해하기 쉬운것이 아니라 다소 어렵다는 반응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만 이해하고 '뿌나' 를 본다면 쉽고도 훨씬 재미있게 볼수있습니다.
01. 비밀 프로젝트인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테리 역사극
밀본의 우두머리인 정기준의 실체가 드러나고, 강채윤과 소이가 마침내 서로의 정체를 밝혀내면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점점 흥미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세종의 주도 하에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한글 창제 과정입니다.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공개적으로 추진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사안이어서 세종을 중심으로 왕의 최측근 가신들과 집현전의 몇몇 학사 그리고 몇명의 궁녀 등 극소수 인원만 참여하여 일종의 비밀 프로젝트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대부 뿌리론'을 내세우면서 사대부 중심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기준의 비밀조직은 물론 복수를 위해 궁에 들어온 강채윤도 아직까지 세종의 문자 창제에 대해선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글 창제는 이들의 사상이나신념을 훨씬 뛰어넘는 경천동지할 사안이어서, 드라마상에서 세종의 최측근 세력을 제외하곤 아직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종 실록에 서술된 최만리를 비롯한 중신들의 극렬한 반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새로운 문자 창제는 문화사업 이전에 조선의 사대부와 유교 지식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정치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종은 몇몇 측근만 데리고 극비리에 한글 창제를 추진했고, 훈민정음이 완성되자 이를 기습적으로 반포했던 것입니다.
02. 세종의 집현전 VS 정기준의 밀본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비밀 결사체인 밀본이 갈 길 바쁜 세종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밀본은 아직 세종의 프로젝트에 대해선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왕의 의도가 무엇이든 밀본은 조선 사대부들의 실질적인 멘토였던 정도전의 밀지를 이어받아 왕권에 저항하기 위해 물밑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밀본은 그 일환으로 집현전 젊은 학사들에 대한 연쇄살인극을 벌였는데, 세종은 연쇄 살인사건 와중에 혹여라도 자신의 비밀 프로젝트가 새어나갈까 우려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세종은 자신을 해치려고 궁에 들어온 강채윤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에게 밀본수사를 일임하고, 강채윤이 밀본을 뒤쫓는 틈을 이용해 훈민정음 완성에 박차를 가합니다. 강채윤은 세종의 신임을 얻어 세종과 독대할 절체절명의 기회를 얻기 위해 밀본 세력에 접근하여 그들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밀본은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비밀결사체인 만큼, 조직 내부에서조차 조직원들을 전부알지 못합니다. 그에 반해 집현전은 인재를 모아 놓은 일종의 국책연구기관으로써 그 자체로 엘리트 집단이자 세종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했던 부서입니다. 밀본은 그간 백정으로 행세해온 가리온이 최근 놀랍게도 본원 정기준으로 정체를 드러냈을 정도로 은밀하게 운영 관리되는 조직입니다.
그에 반해 집현전은 국가의 공식적인 연구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세종의 밀명을 받은 몇몇 학사들이 왕을 보좌하여 한글 창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왕의 최측근인 정인지를 비롯하여 젊은 학사들인 성삼문, 박팽년 등 극히 소수의 인원만이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집현전 부제학인 밀본 심종수마저 세종의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만큼, 문자 창제와 관련된 부분은 비밀리에 관리되고 있습니다.
집현전의 역점 프로젝트나 밀본이 모두 은밀하게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흥미롭습니다. 밀본이 세종의 집현전에 잠입하여 사건을 일으키자, 세종은 강채윤이라는 카드를 꺼내 그들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세종을 쫓던 밀본은 이제 강채윤에게 쫓기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결국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비밀 프로젝트인 한글창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테리 역사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03. 세종과 밀본의 뿌리 논쟁
드라마는 왕과 사대부 비밀조직 사이의 쫓고 쫓기는 미스테리 역사극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종을 중심으로 하는 왕권과 삼봉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신권간의 치열한 사상 논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뿌리 논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도전에 의하면 왕은 꽃에 불과한 존재이고, 조선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사대부 자신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밀본은 사대부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재상 중심의 유교 국가를 지향합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한고조 유방이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해 한나라를 세웠다며, 자신도 이성계를 이용해 조선을 개국한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정도전의 철학을 기반으로 '사대부 뿌리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전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왕권에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왕을 꽃에비유했는데 꽃은 시들면 언제든 꺽어버릴 수도 있기에 이런 말은 왕권에 도전하는 불경스런 언사로 비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지나친 자신감이 정도전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릅니다.
드라마에서 정도전을 시조로 하는 밀본도 당연히 '사대부 뿌리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드라마 상에서 이에 대한 세종의 명확한 입장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보면, 세종은 아마도 '백성 뿌리론'에 근거하고 있는것으로 보여집니다. 한글 창제가 바로 그에 대한 대답입니다. 백성과 소통하고 삶의 현장에서 백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필요 하다는게 세종의 생각입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으로 옳게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비로소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군왕을 비롯한 조정은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실제로 세종은 갖가지 위민정책은 물론 최대의 치적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법 이전에 말과 글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시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뿌리는 군왕도 사대부도 아닌 백성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종의 백성 뿌리론을 감안해 본다면, 왕에 대한 강채윤의 오해와 복수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오해는 차치하고라도 한글 창제 이면에 내재된 숨은 뜻을 알게 되면 강채윤은 아마도 자신의 사적 복수심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세종의 깊은뜻을 깨닫는 순간 강채윤은 아마도 한글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세종의 조력자로 변신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04. 21세기형 군주로 거듭난 세종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신분 질서에 관계없이 등장 인물들의 자유로운 면담과 의사표현입니다. 일개 겸사복(강채윤)이 군왕(세종)의 면전에서 독대를 요청하는가 하면, 일개 궁녀(소이)는 감히 군왕에게 학사들에게 사실을 설명해주라며 재촉하듯 권유하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천민 백정을 만나기 위해 세종이 몸소 노비촌을 찾기도 합니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들입니다. 이렇듯 '뿌리깊은 나무'는 군왕이나 소수의 정계 실력자들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이 아닌, 군왕과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드러내면서 드라마를 전개해 나가는게 특징입니다. 위로는 군왕에에서 신하를 거쳐 아래로는 노비와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군들이 함께 엮이며극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글을 몰라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는게 세종의 생각이었습니다. 언문은 백성을 교화하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의사표현의 편리함을 외면할 수 없다는게 또한 세종의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기 위한 세종의 결단이 바로 한글 창제로 나타났다고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드라마를 통해 15세기의 성군 세종은 격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백성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21세기형의 열린 지도자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박혜정기자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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