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터널’ 김성훈 감독이 생각하는 ‘유머와 풍자’

기사 등록 2016-08-1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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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집으로 가는 길, 터널이 무너졌다’는 보편적 상황을 꺼내들었다. 영화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이번에도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에 그만의 재기발랄함을 첨가해 작품을 완성시켰다. 전작 ‘끝까지 간다’(2013)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머, 풍자가 돋보이는 김성훈의 필모그래피가 또 하나 탄생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김성훈 감독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원작 소설이 있었는데, 눈 뜨자마자 터널 안이라는 도입부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한 명이 붕괴된 터널 안에 있다는 것이요. 하지만 원작은 톤 앤 매너가 다르죠. 그렇게 우울하게 만들 자신은 없었어요. 톤 앤 매너를 밝게 변화주고 싶었고, 만드는 사람도 위안 받고 유머러스하게 상황적 아이러니를 주면서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끝까지 간다’에서 김 감독은 어머니의 장례식 날, 급한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향하던 형사 고건수(이선균 분)가 갑작스럽게 일으킨 교통사고의 시신을 어머니의 관 속에 숨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이러니한 웃음과 쫄깃한 긴장감을 극도로 살려 연출했다. 이 작품 하나로 감독은 자신의 장점과 재주를 단번에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톤이 ‘터널’에서도 적용된다.

“원작의 어둠과 무거움을 안 다룰 수는 없었지만, 관객들에게 그러한 진행만 계속 보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 것 같았어요. 효과적으로 지켜보도록 만들고 싶었죠. 가장 안 웃길 것 같은 내부 있잖아요. 이 인물이 상황적 아이러니에 처해지는 장면들을 통해 웃음을 주고 싶었어요. ‘끝까지 간다’에서도 그렇고, 밀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는 이유가 ‘내가 밀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선가?’, ‘내 기억 속에 밀실이 있나?’라고 생각해 보고는 있어요. 제 무의식중에 그런 게 있기는 한가 봐요.”

밀실에서 풍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김 감독은 완전한 밀실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터널’을 통해 주인공 정수(하정우 분)의 생존기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정수는 어느 날 대형 터널을 지나가다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외로이 갇히고 만다. 그가 가진 거라곤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뿐이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감독이 그린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는 예상치 못한 웃음 요소가 꽤 많다.




“어두운 곳에서 줄곧 촬영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죠. 터널이 붕괴된 칙칙한 곳을 설정한 채 한 명을 두고 찍는 것도 그랬고요. 관객들이 영화를 2시간을 봤을 때 끝까지 답답함만 갖고 가기를 원치 않았고 저 스스로도 못 볼 것 같았어요. 두려움을 주는 장애물 요소를 설득력 있게 그리고 싶었어요. 최대한 인물에 집중되도록 만들려고 했어요.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상황에 익숙해지는 행위를 보여주고 싶었죠. 처음에는 배우가 주변에 갇힌 느낌이지만 갈수록 배우만 보이도록이요.”

“촬영장은 밝아야 할 것 같았어요. 또 하나의 과정이고 일터잖아요. 촬영을 하다보면 분위기가 심각해질 때도 많은데 어둡거나 다운되면 저조차 있기 힘들더라고요. 즐거움의 에너지는 영화에도 담기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접할 법한 상황을 특별한 진행으로 펼치는 ‘터널’은 결국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는 감독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재난 영화 ‘터널’은 꽤 많은 작품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베리드’와 ‘데이라잇’, ‘더 테러 라이브’와도 많이들 언급하시는데, ‘터널’은 또 다른 영화예요. 그런 생각을 하던 분들이 ‘터널’을 보면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을 수 있겠네요. 시나리오를 모니터링 할 때 참조할만한 영화를 못 들겠더라고요. 촬영 전 동료 감독에게 이만희 감독님의 ‘생명’에 대해 듣고 영화를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1969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지금의 현존하는 이야기 같았거든요. 그 당시의 기술력으로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인 인간의 존엄을 풀어놓는데, 촌스럽지 않게 이야기해요.”

“관객들이 재미있어했으면 좋겠어요. ‘터널’이 좋은 영화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두려움, 긴장을 느꼈다면 긍정적인 반응이라 생각해요. 포괄적으로 얘기하고 싶었어요. 의식이 필요한 것 같고, 생명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싶었죠. 그걸 실천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주인공 정수 역 1순위를 하정우로 염두 했다는 김 감독은 과거 하정우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고 작품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터널’은 시나리오에 없는 컷 바이 컷의 간극과 롱테이크 전반을 채워야하는 순간에서 하정우의 연기가 실로 큰 도움이 됐다. “‘살인의 추억’의 롱테이크 논두렁 장면이 그랬듯이, 저희도 롱테이크를 촬영할 때 즉흥적인 게 오히려 유머가 됐어요. ‘웃겨야지’라고 힘줘서 촬영하면 과잉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정우의 능청미와 김 감독의 유머러스함. 일맥상통한 매력이다. 실제 만남에서도 두 사람은 척척 맞는 호흡을 자랑할 것 같다. ‘터널’에서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저는 하와이 국제영화제로, 정우 씨는 ‘허삼관’이 끝나고 휴가로 하와이를 갔는데, 그 때 공항 입국처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후 와이키키 거리에서 또 만났고, 그 다음에 얘기를 나눴는데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이름도 같은데다가 A형으로 혈액형도 같아요. 그래서 ‘피가 필요하면 옆에 있어줘’라고 농담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웃음) 끊임없이 유머가 나오는 친구인 것 같아요. 그런 분이 옆에 있으면 에너지가 생기죠. 처져있다가도 힘을 얻어요. 심장이 두 개인 친구인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칭찬을 할 수밖에 없어요.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절로 흥도 나고 고맙죠. 장면 장면들을 보고 어떻게 이걸 이렇게 생각 이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해요.”

극에서는 하정우가 영화의 대부분 장면을 이끌어가지만, 정수를 놓고 하루 이틀 변해가는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보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보여준다. 정수를 구하기 위해 가장 애쓰는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 그리고 정수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전화, 라디오로나마 안부를 주고받는 아내 세현(배두나 분)의 활약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내 세연 역할은 어떠한 인위적인 조미료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친구는 어쩌면 정수보다 더 큰 아픔을 지닌 인물일 것 같았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잘 법한 심리 상태를 연기 기술로 선보일 때 가장 솔직한 무언가를 표현할 사람으로 배두나 씨를 떠올렸죠. 예전에 ‘괴물’에서 조카를 잃었을 때 표정이 인상 깊었어요. 오달수 선배님은 정우 씨 다음으로 캐스팅했어요. 하 배우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왠지 외형적으로도 그렇고 친근한 사람이었으면 싶었어요. 대경은 유머를 일부러 생성하기보다 상황적으로 자아낼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죠. 오달수 씨는 진정성이 통할 수 있는 배우라 생각했어요.”

배우들의 호연을 중심으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상황과 주변의 풍경들은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김성훈 감독의 영화는 뻔한 듯 하지만 뻔하지 않다. 디테일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놀 줄 안다.

“모든 스태프들이 쉽지 않게 촬영했죠. 세트 티가 날 수 있음에도 ‘터널’에서는 질감이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도록 노력했어요. 가짜 티가 나면 관객들의 감정이 먼저 이탈될 것 같더라고요. 준비 단계에서부터도 찍으면서 질감, 디테일의 끝을 달리려 했어요.”




‘터널’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이번에도 돋보이는 ‘하정우표 먹방’과 터널 속 조우한 강아지 퍼그 한 마리의 활약이다. “워낙 먹는 걸로 알려진 친구잖아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굳이 의도해서 먹방을 넣은 건 아니에요. 정수에게는 생존의 과정이었잖아요. 어떤 걸 먹어야 사실적일까를 고민했어요”

“강아지 투입은, 남자 혼자 있는 공간에서 어둡고 외로울 때 주인공이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어요. 보는 사람도 함께 이겨내는 동료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 안에서 누구를 보살펴요. 나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강아지가 나타나니 황당하죠. 하지만 개연성 있게 도움을 주는 생명이 나오는 것은 큰 흥미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부터 ‘끝까지 간다’, 그리고 ‘터널’까지. 필모그래피 수가 많지는 않지만 김성훈 감독을 떠올렸을 때 ‘유머’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매 작품마다 강렬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는 방증이겠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긍정적 의미로 일관됐다.

“항상 느끼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직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제가 서른이 돼서 감독 일을 늦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 있죠. 저에게는 어렸을 때 영화가 그냥 놀이 같았어요. 저희 또래의 여느 사람들처럼 딱 그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죠. 극장을 운영한 친척 덕에 영화를 자주 보다보니 극장이 친해졌어요. 놀이터 같은 존재였죠. 영화보다 극장이 친숙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도 놀이터 같은 존재로 영화를 대해요.”

“앞으로 어떤 장르로 영화를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능력이 닿는 한 유머는 꾸준히 다루지 않을까 싶어요. 유머는 이야기를 운반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아이러니한 유머는 더욱.”


(사진=이슈데일리 한동규 기자)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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