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케치]‘서울역’ 날카로운 시선과 섬세한 감성의 만남

기사 등록 2016-08-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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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양지연기자] 피를 흘리는 노숙자가 서울역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함께 노숙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의 고통을 돌아봐주지 않는다. 소외된 사람에게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금세 서울역 일대를 뒤덮는다. 이성을 잃고 사람에게 달려드는 감염자들 속, 집을 나온 소녀 그리고 소녀를 찾는 남자친구와 아버지는 서로를 만나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서울역’(감독 연상호)은 의문의 바이러스가 시작된 서울역을 배경으로 아수라장이 된 대재난 속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부산행’의 프리퀄로 당당히 나온 ‘서울역’은 어떤 메시지를 이어갈까.

10일 오후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동대문 메가박스에서는 ‘서울역’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연상호 감독과 배우 류승용, 심은경, 이준이 참석해 영화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연상호 감독은 “불과 얼마 전에 ‘부산행’으로 기자간담회를 했었는데 또 만나게 됐다. ‘부산행’에 대한 예상치 못했던 관객들의 반응 덕분에 같이 작업한 배우, 스텝들과 정말 행복했다”고 말문을 텄다.

극중 오매불망 혜선(심은경)을 찾아다니는 아버지 석규 역을 맡은 류승룡은 “‘돼지의 왕’을 보면서 실사영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사회비판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서울역’에 함께 하게 됐다. ‘부산행’으로 충분히 결실을 맺었으니 ‘서울역’으로도 영화의 취지에 맞는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고 이번 영화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서울역’은 ‘사이비’, ‘돼지의 왕’ 등 애니메이션을 통해 통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섬세한 연출로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은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흔하지 않은 ‘선녹음’ 방식을 차용했는데 이에 대한 배우들의 소감도 특별했다.

가출 소녀의 위태하고 불안한 모습을 목소리만으로도 효과적으로 드러낸 심은경은 “더빙은 제가 자주 접하지 못했던, 전문으로 하는 분야가 아닌데다 전문 성우 분들도 따로 계신데 내가 섣불리 도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며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롭게 연기를 하는 연출 방식을 따르다보니 입 모양을 맞춘다든지 하는 고민에서 자유로워져 혜선의 감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퍼진 후 애타게 혜선을 찾아다니던 남자친구 기웅의 목소리를 담당한 이준은 “그 전에 애니메이션 더빙을 했을 때는 입모양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했었는데 이번에는 스케치만 보고 해서 딱히 싱크를 맞출 필요가 없고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어서 편했다.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며 “거의 놀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상호 감독은 “선녹음을 통해 배우 분들의 좀 더 자유스럽고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 되면서 영화가 좀 더 독특한 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도를 밝혔다.

이어 그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내가 모든 걸 창조해내기 보다는 연기를 하는 아티스트의 연기하는 법 등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어서 선녹음을 하는 것이다”라며 “그런 측면에서 어떤 배우의 어떤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캐스팅을 한다. 우리나라 전문 성우들의 경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제작에 참여한 ‘카이:거울 호수의 전설’의 경우 전문 성우 분들만 기용했는데 성우 오디션을 보는 과정이 힘들었다. 오디션을 보고 거기에서 맞는 톤 앤 매너를 찾는 게 힘들기 때문에 영감을 주는 배우 분들과 주로 제작하는 편이다”라고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를 기용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서울역’도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심은경은 ‘희망적’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단순히 감염자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우리가 한 번 더 뒤돌아볼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런 문제점에 대해 자각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뜻깊었고 더빙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돼서 영광이다”라며 ‘희망적’이라는 말뜻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에 대해 감독은 “서울역이라는 공간에서 보이는 자잘한 사건들, 마치 심야 뉴스에 한 토막 나오게 되는 사건들의 총합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좀비라는 장르과 일관성 있는 스토리로 연결하되 영화에 나오는 순간순간의 풍경과 작은 이야기들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면서 우리가 토막 뉴스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을 모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고 말해 ‘서울역’이 우리가 사는 현재 사회를 여실히 반영했음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결말에 대해 “예산이 많은 영화가 아니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중 가장 극단적인 생각을 드러내기에 좋았다. 내가 하는 여러 생각 중 극단적인 생각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하며 “이 영화의 엔딩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이비’, ‘돼지의 왕’도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이 비관적인 엔딩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다시 사회를 살아간다는 면에서 엔딩이 곧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밝혔다.

영화에 임한 배우들의 소감도 이어졌다. 우선 이준은 “‘부산행’을 보면서 심은경씨가 너무 좀비 연기를 잘 하셔서 부러웠다. 부산행에 나오시는 좀비 분들 연기를 해봤는데 잘 되더라. 잘 꺾을 수 있으니까 시켜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류승용은 “대중적이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것을 ‘부산행’으로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실사영화에서 직접 구현할 수 없는 부분을 이번 ‘서울역’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적절하게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며 “영화의 이야기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영화의 흥행도 서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연상호 감독의 고급지고 훌륭한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일 폭염인데 이 영화가 청량감을 줬으면 한다”고 흥행에 대한 바람을 조심스레 내보였다.

마지막으로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과 ‘부산행’은 너무나도 다른 영화라 생각한다. 예산부터 표현 방법까지 다 다른 색깔의 영화가 하나의 짝으로 연이어 개봉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즐겁다. ‘부산행’이 이미 천만 관객이 본 영화가 됐지만 ‘서울역’의 개봉으로 인해 ‘부산행’의 내적인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3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는데 이렇게 한 시기에 두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감독으로서 행복하다”고 본인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감독의 말대로 ‘서울역’은 실사영화인 ‘부산행’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를 한 발자국 뒤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일까. ‘부산행’보다 조금은 더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메시지를 담은 ‘서울역’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관객들에게 ‘현실적이지 않은’ 재난 속 가장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8일 개봉.


(사진=이슈데일리 박은비기자)

 

양지연기자 jy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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