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아수라’ 주지훈이기에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감

기사 등록 2016-09-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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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양지연기자] ‘선방했다’고 표현하기에는 아깝다.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이 15년 만에 의기투합한 작품, 황정민과 곽도원이 ‘곡성’ 이후 또다시 맞붙은 작품 등 굳이 주지훈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아도 ‘아수라’는 개봉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영화가 상영된 두 시간여 동안 주지훈이 보여준 연기의 잔상은 그를 빗겨나갔던 스포트라이트와 그로 인해 드리워진 그늘 아래서도 자력으로 빛났다.

‘아수라’에서 주지훈은 주요인물 중 유일하게 선인에서 악인으로 바뀌어가는 문선모를 연기했다. 다소 수수한 행색에 가지런히 내린 생머리로 처음 관객들과 마주한 문선모는 선배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옆에서 눈치 없는 행동을 하며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관객들의 시선이 주인공인 정우성을 따라가고 있을 때, 주지훈은 역할의 초반 성격을 자연스럽게 구축한 것이다.

그랬던 문선모가 변화한다. 그의 선인에서 악인으로의 대비는 한도경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처음에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보고있지만, 다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아 다른 방향에 시선을 둔다. 이는 같은 입장에 서있던 이들이 특정한 사건을 기점으로 서로 다른 곳에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 사건이란 한도경이 문선모를 비리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수하로 보낸 것을 의미한다.

지금껏 정의라고 포장됐던 형사의 옷을 벗어버린 문선모는 박성배로 대변되는 절대악에 동화된다. 영화는 동화의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악인으로 변모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이는 변하기 전의 문선모가 얼마나 백지 같은 순수함을 지녔었는지 역설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문선모는 명품 수트를 입고는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다. 그가 악행에 동참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그가 가진 순수함은 달라진 주변 상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잠식하도록 도울 뿐이다. 극한까지 치닫는 악인 연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미 여러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가 흰 바탕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까다로운 일임은 마찬가지다. 주지훈은 순수한 선을 만면에 드러낼 수 있는 배우로 성장했음을 문선모라는 역할을 통해 입증해냈다.

결국 한도경에게 또 다른 위협이 되고만 문선모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악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는 상황에서 삶을 좌지우지하는 고뇌를 나눈다. 주지훈은 이 장면 속 문선모의 모습 때문에 그를 연기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도경과의 대립 속 문선모가 지녔을 감정을 수없이 상상해보던 주지훈은 막상 촬영장에서 그 감정이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보게 되는 문선모의 근원적인 흔들림은 오케이 사인이 나도 ‘한 번 더’라고 외친 주지훈과 묵묵히 감정을 맞춰준 정우성의 열정으로 완성됐다.

관객들은 악인이 된 문선모가 마음속에 선함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영화 말미에 깨닫게 된다. 문선모는 한도경의 가장 큰 약점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인물임에도 그것을 빌미로 그를 흔들려 하지 않았다. 그런 문선모가 한도경과 최후의 사투를 벌이면서 겪는 망설임과 괴로움은 주지훈의 세심한 표현력으로 발휘된다. 그것이 바로 지옥을 펼쳐 보이는 악인들의 아수라 속 주지훈만이 발휘할 수 있던 존재감의 근원이다.

겨눈 총구의 방향이 명확했던 김차인(곽도원), 도창학(정만식), 박성배 사이에서 문선모는 한도경과 다른 형태로 흔들리며 전개의 방향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아수라’는 정우성, 곽도원, 황정민의 삼각구도뿐만 아니라 내면의 파도를 타던 주지훈 역시 빛났던 영화다. 배역에 대한 이해, 그 이해를 표현해내는 몰입도 등 어느덧 일취월장한 그의 연기력은 ‘아수라’를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진=이슈데일리 DB)

 

양지연기자 jy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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