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부산행’ 정유미, ‘히말라야’ 얘기에 눈물 흘리는 소박한 배우

기사 등록 2016-08-0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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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배우 정유미의 연기는 예의주시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역할부터 중심을 아우르는 인물까지 가리지 않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름다운 외모가 어쩌면 편견으로 다가올 수 있음에도 어딘지 사람 냄새가 난다. 이번 ‘부산행’(감독 연상호)에서 역시 그의 매력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룬 영화에 풍성한 색깔을 입히는 결과를 낳았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일단 의심이 없었어요. 시나리오에 힘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감독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독특한 기운이 느껴졌고, 왠지 그 분이 만드는 영화가 궁금했어요. 끌어당김 같은 게 있었죠. 이런 소재의 영화가 처음이라 데뷔작 같은 느낌도 들어요.”

‘부산행’은 의문의 좀비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KTX에 탑승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안에서 정유미는 상화(마동석 분)의 아이를 가진 임산부 성경 역을 맡아 연기한다. 열차 안에서는 크게 이기적 인물과 이타적 인물로 나뉜다. 성경은 여의치 않은 상황임에도 이타적 인물을 대표한다.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저는 그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싶어요. 그저 하나의 작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무섭겠어요.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많기를 기대해 봐요. 임산부 역할을 소화하면서는 일부러 더 무게감 있게 배를 만들었어요. 스펀지로 만든 가벼운 배도 있었고요. 생각보다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어요. 완전히 제 몸이 아니라 어떤 날은 흘러내리기도 했죠.(웃음)”




마동석과의 케미는 극의 큰 흥미를 이끄는 요소로 자리한다. 덕분에 영화를 본 이후에도 두 사람의 잔상은 크게 남는다. 커다란 몸집의 조폭 출신 상화가 성경 앞에서만은 기를 꺾고, 그의 말 한 마디에 금세 복종하는 순애보를 펼친다. 아기를 배고 거동하기도 쉽지 않은 연약한 외형의 여성의 몸이지만, 당차게 상화를 휘어잡고 정의 앞에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성경이다.

“최고의 커플이요? 너무 신기한 말이죠. 드라마에서는 길게 호흡을 맞출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짧은 장면들로 비춰졌는데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신기하고 기분 좋기도 하고 다행이라 생각해요. 마동석 씨가 상화와 일치하는 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섬세하고 자상하고 배려심 있는 부분이요. 출연 배우들 중에 저희가 유일하게 대사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마동석 씨가 애드리브를 하면 제가 리액션을 한 부분도 꽤 많았고요.”

“현장 분위기는 참 좋았어요.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현장에서 훈훈한 분위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게 좋았어요. 김의성 선배님이 제일 연장자이신데, 악역을 하는 와중에 편하게 장난도 걸어주시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갔던 것 같아요. 마동석 씨와 공유 씨와는 친밀도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고요. 우식 씨, 소희 씨는 워낙 귀여워요. 다들 잘 어우러졌던 것 같아요. 수안이는 인간비타민이었죠. 현장에 아역 배우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괜히 험한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고 숭고해져요.(웃음) 제가 많이 보고 배우고 있어요. 애티튜드를 닮고 싶은 여배우에요.”

‘부산행’은 액션 스릴러 장르다. 좀비가 출몰한다는 설정 속에서 엑스트라를 포함한 수많은 배우들이 서로를 죽이려 혹은 살리려하며 과격한 액션을 불사한다.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영화처럼 배우들도 쉴 새 없이 고군분투한다.

“방심하고 있다가 저도 깜짝 놀란 적이 많아요. 화장실 갔다가 좀비 분장한 배우들을 마주치면 놀라고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죠. 출연자 분들이 저희보다 한 두 시간 더 일찍 오셔서 분장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짜 많이 고생했어요. 특히 남자 배우들이 많이 부상을 입기도 했죠. 영화 촬영 끝나고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늘 타고 다니던 건데 말이에요.”




데뷔 14년차에 접어든 정유미가 지금 시점에서 도전하고픈 장르가 있을까. “사극도 해보고 싶고 제대로 된 액션 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한계가 될 지, 뛰어넘는 계기가 될 지 궁금해요. 벌써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네요. 신기해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는 저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느리더라도 제 나름의 논리가 맞아야 일을 진행하는 성격이거든요. 예전에는 인터뷰가 되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이 영화로 인해 변화하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해요. 용기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작년에 움츠러든 시기도 있었거든요.”

2003년 데뷔 이래로 매해 쉬지 않고 다작을 해온 배우다. 영화계에서 ‘가족의 탄생’ ‘차우’ ‘내 깡패 같은 애인’ ‘도가니’ ‘우리 선희’ ‘히말라야’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정유미는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연애의 발견’으로 안방극장까지 섭렵하더니, ‘부산행’으로는 칸 국제영화제까지 진출했다. 이만하면 배우로서 어느 정도의 안정적 궤도에 오른 상태지만 정유미는 초심으로 늘 한결 같다.

“칸의 영향이라기보다 ‘히말라야’를 계기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를 돌아보게 됐죠. 그 때 부산행 시나리오도 눈에 들어온 거예요. ‘히말라야’를 찍으면서 느낀 것들이 부산행 선택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이번에는 더 큰 비중으로 출연하게 됐고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히말라야’ 촬영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연애의 발견’을 하고 ‘히말라야’를 했을 때, 주변에서는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고 왜 작은 역할을 이어서 하냐고들 했죠. 하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역할이어도 저를 배우로서 많이 존중을 해주셨어요. 황정민 선배님을 보면서 너무 대단하다 생각했고, 쉽지 않은 촬영인데 다른 배우들도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즐거웠어요. 그 전에 사실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너무너무 고마웠죠. 분량보다 나올 수 있다는 거 자체로 배우로 존중 받는 다는 게 내가 할 일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매일 매일이 고마웠어요. 부산행도 그랬고요.”




정유미는 스타보다 배우를 꿈꿨고, 그러한 행보를 꾸준히 밟아 나아가고 있었다. 화려하기보다 은은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간 작품들에서 보여 온 소박한 매력이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설을 이끄는 사람은 정작 담담하다. 개봉 열흘 만에 어느덧 840만 관객 수를 훌쩍 넘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까지는 배우의식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갑자기 임팩트 있게 나오거나 일약스타가 됐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아 오히려 그게 부담은 없더라고요.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아직 저한테는 거창한 표현이에요. 그저 직업이 배우일 뿐인 거죠. 각자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천만 언급도 하시지만, 300만, 500만도 굉장히 큰 숫자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야, 재미있다!’ ‘또 보러 오자’ 그 정도만 말씀해 주셔도 감사해요.”


(사진=매니지먼트 숲)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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