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잘했나]'말'보다 '행동', 순간의 몸짓으로 빛낸 캐릭터는?

기사 등록 2016-10-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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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넘쳐난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르는 그들을 하나의 주제에 놓고 선별해 볼 필요가 있었다. <편집자 주>

영화에서, 혹은 배우에게 대사는 무척 중요한 것이다.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보여지는 것'이니만큼 때때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움직임이 더욱 빛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주 '누가누가 잘했나'에서는 말보다 행동, 움직임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간 캐릭터와 배우를 모아봤다.


# 빌리 엘리어트(2000, 감독 스티븐 달드리) -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몸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춤이다. 그리고 그 춤 중에서도 대사 이상으로 많은 걸 보여주는 영화라면 '빌리 엘리어트'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영국, 광부 아버지 밑에서 권투를 배우게 된 빌리가 같은 학원에서 발레를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영국 로열 발레의 남성 무용수 필립 모슬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 역을 맡은 제이미 벨은 공개 오디션에서 발탁됐는데 이는 실제로 그가 춤과 발레에 능할 뿐만 아니라 '남자가 발레를 배운다'는 편견 때문에 놀림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제이미 벨은 이 작품에서 단순히 춤만이 아니라 가족과의 갈등, 스스로의 고민 등을 섬세하게 풀어내 지금까지도 꾸준히 필모그라피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형과 선생님의 싸움을 지켜보고 그 스트레스에 춤을 추기 시작하는 'Town Call Malice' 장면이다. 좁은 화장실의 탭댄스를 시작으로 계단과 벽을 오가며 몸부림에 가까운 그의 춤을 보고 있자면 빌리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공감하고 또 그의 재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길게 뻗은 고갯길을 탭댄스로 달려오면서 스스로 결단을 내려가는 이 장면의 막바지는 고요함 속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 복수는 나의 것(2002, 감독 박찬욱) - 류(신하균)

두 작품을 놓고 고민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영화 '트라이브'와 이 '복수는 나의 것'이 갈림길이었다. 굳이 한 쪽의 손을 들어주자면 '복수는 나의 것'. 작품의 우열을 떠나서 '트라이브'는 모든 인물들이 청각장애인이기이에 영화 전체가 몸짓에 가깝다. 때문에 '인물'에 초점을 맞춘 이번 랭킹에서는 류를 소개하고자 한다.

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의 모든 언어는 그래서 손짓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 지점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장애인을 연민 때문에 선하게만 그리거나 혹은 뒤틀린 시선으로만 그리는 우를 범한다면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명명백백하게 이 세상에 사는 일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 속 약자이기에 이 영화의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신하균은 이 영화에서 오로지 몸과 눈빛만으로 모든 걸 표현해냈다. 그의 연두빛 머리와 함께 매순간 감정을 담아낸 표정들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기묘한 느낌을 부여했다. 심지어 정사 장면에서도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다소 기괴한 느낌마저 들기도.


# 사랑은 비를 타고(1952, 감독 진 켈리·스탠리 도넌) - 코스모 브라운(도널드 오코너)

'사랑은 비를 타고'를 언급하면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진 켈리가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싱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일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진 켈리의 수많은 매력도 귀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도널드 오코너의 '원맨쇼'가 빛나는 '메이크 뎀 래핑(Make'em laugh)' 장면이다.

돈 락우드(진 켈리)와 함께 활동하는 피아노 연주자 코스모 브라운 역으로 출연하는 도널드 오코너는 실제로 이 장면을 찍고 나서 몸살이 나기도 했다고.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유쾌하게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이 장면을 보면 잘 만들어진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장면은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지 않았어도 드라마 '글리'를 본 사람들이라면 기시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시즌 2의 7화에서 해당 장면을 고스란히 재현했기 때문. 도널드 오코너 특유의 표정 연기 등은 빠졌지만 이 장면의 안무는 그대로 살려내 원작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감독 조지 밀러) - 맥스 로켓탄스키(톰 하디)

말보다 행동, 이걸 과묵으로 치환한다면 이 캐릭터가 빠질 수 있을까.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핵폭발 이후 세계의 대표적인 생존자라 할 수 있는 맥스는 단언컨대 제이슨 본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과묵 캐릭터 중 하나이다.

상대에게 헛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인지, 대화 상대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간략하게 할 말만 하는 그는 톰 하디를 통해 멜 깁슨과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발달된 육체 능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은 그가 왜 말보다 행동에 가까울수 밖에 없는지 알게 했다.

그 중 가장 정점은 무기 농부의 일당을 홀로 제압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맥스가 잔뜩 피가 묻은 채로 돌아오자 일행들은 걱정하지만 그는 "내 피 아냐"라는 한 마디만 던질 뿐, 어떤 동요도 없다. 어쩌면 거론했던 캐릭터 중 물질적인 행동이라면 맥스가 가장 가깝지 않을까.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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