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아가씨' 하정우, '느낌' 있고 '파이팅' 넘치는 배우

기사 등록 2016-06-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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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소준환기자]“스토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좋으면 캐릭터가 같이 좋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스토리가 좋지 않으면 캐릭터가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전작도 이번 ‘아가씨’도 알 수 없는 사람, 집도 절도 없고 국적도 모호하고 그런 인물들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맡은 백작이 사기꾼이라서 나쁜 것이라기 보단 안쓰러워 보였어요.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어난 존재가치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 또 끝까지 살아보겠다며 자존심도 버리고 겉모습만 따지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런 부분들이 궁금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가격을 보지 않고 와인을 고르는 태도를 해보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아이 같았어요. 이름이 고판돌이라는 점도 그렇고 얼마나 자기 이름을 후지와라 백작이라 짓고 싶었을까(웃음). 그런 부분들이 일종의 연민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우 하정우는 신중하면서 재치 있다. 그는 배우로서 자신이 맡은 배역은 물론 그 역할에 대한 고민과 생각 역시 능숙하기에 그렇다. 신작 ‘아가씨(감독 박찬욱)’로 돌아온 하정우는 사기꾼인 백작을 연기하며 필모그래피의 지평을 확충시켰다. 작품 속 백작은 마치 하정우의 전작 ‘멋진 하루’의 병운과 ‘더 테러 라이브’의 앵커를 혼합시킨 것 같은 묘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신선’과 ‘파격’이란 키워드가 피력하듯 올 상반기 화제작임에 틀림없는 ‘아가씨’의 하정우와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느낌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아가씨’가 깐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다녀왔습니다. 사실 깐느에서는 자막을 이해 못했어요(웃음). 그림만 본 셈입니다. 깐느에서 돌아오는데 7시간 대기했어요. 직항이 없었습니다. 첫인상이 기억에 남는 법인데 처음 깐느에 갔을 때는 열악했죠. ‘용서받지 못한 자’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됐었고 어떤 지원 없이 다녀왔습니다. 숙소도 리스였고 당시 ‘괴물’ 팀 있었고 최민식 선배도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과 막차 놓쳐서 버스 정류장에서 얘기했었어요. ‘다시 오자. 좋은 감독 좋은 배우로 오자’ 얘기하며 파이팅 했는데 10년 전을 돌아보니 감회도 새롭고 그때의 기분도 들고 다시 북돋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윤종빈이 가장 많이 축하했어요. 나중에 경쟁부문도 같이 가자며 우정다짐 했습니다(웃음).”

하정우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의 눈빛은 추억의 파편을 더듬으며 작은 부분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리는 듯 진중한 면모를 보였기에 그렇다. 중앙대학교 동문인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의 인연도 남다르나 그의 상업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와 ‘황해’를 통해 맺은 나홍진 감독과의 관계도 각별할 터. 더군다나 하정우는 ‘아가씨’로 나홍진은 ‘곡성’으로 두 작품 모두 제69회 깐느 영화제에 진출했다.



“나홍진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성스럽게 작품을 대하는 점 같아요. 배우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끈질김이 있다고 해야 될까 원하는 장면을 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저 역시 다음 작품을 해보면 그분들에게 배운 점들을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깐느에 ‘곡성’ 팀도 같이 갔는데 ‘곡성’ 언론시사회 날 나홍진 감독과 통화하고 서로 축하했습니다. 기억 남는 게 ‘아가씨’ 팀과는 사적인 자리를 많이 마련했었어요. 촬영 감독 같은 경우는 광고 촬영을 같이 해봐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자연스럽게 봐왔습니다. 거의 전작을 좋아합니다. 평소 서로 놀리고 그랬어요. 저는 박감독님 데뷔작이나 안 된 작품들 얘기하면서 박찬욱 감독은 저를 ‘하감독’이라며 놀리고(웃음).”

하정우는 내년까지 촬영 일정이 꽉 차 있다. 차기작 ‘신과 함께’와 ‘터널’로 인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것. 그는 스케줄이 없을 때는 “주로 걷는다”고 말한 만큼 일종의 여유로움을 소망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배우는 촬영이 곧 일이기에 촬영 스케줄이 빼곡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증표인 셈. 그 까닭은 어쩌면 그의 열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가씨’를 준비하는 동안 그의 노력과 각오 역시 빛났기에 그렇다.

“백작이란 캐릭터에 대해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같이 공사를 치고 사기를 쳐야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감정 때문입니다. 극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마음이 빼앗기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히데코를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최후를 맞이할 때 마음을 뺏기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히데코는 강해지고 백작은 균열이 생기면서 어떤 연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백작은 캐릭터들 중 가장 현대적인 리듬감 있는 역할로서 표현하는 게 처음엔 생소했어요. 그렇기에 말맛을 살리면서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익혀서 뱉으면 대사가 빨라지므로 거기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있을 수 있거든요. 적정 톤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후반작업에서 후시 녹음으로 손 본 부분도 있을 만큼. 그 당시 재미있던 건 굉장히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사람들 앉혀놓고 조율을 했었습니다(웃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의 발전적인 연구와 분석이 지금의 ‘배우 하정우’를 있게끔 만든 원동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하정우는 전작들의 이슈 등을 통해 이른바 ‘먹방’으로도 유명하다. ‘아가씨’에도 일명 ‘복숭아 먹방’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 더불어 그는 강렬하고 특성 있는 캐릭터들에 힘입어 ‘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로도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감과 관심은 심적인 부담감을 자아낼 수도 있다.

“영화를 볼 때 ‘먹방’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뛰어넘은 것 같습니다. 물론 시나리오 넣을 때 그 부분을 어떻게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죠. 계약조건에 ‘먹방은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웃기잖아요(웃음). 그래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물 흘러가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팬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자 별책부록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은 연기력이란 게 어디 구청 같은 곳에 가서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웃음) 계속 바꿔나가야 될 부분이라 생각하고 부족하면 언제든지 반대되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산 넘어 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연기력이란 게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나이에 맞게 좋은 표현법, 해석,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언이지 고민하게 됩니다. 연기력이란 건 믿을 게 못 된다고 해야 될까요. 결코 혼자 이뤄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좋은 타이틀을 경계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정우는 ‘파이팅’ 넘치는 배우가 맞았다. 그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할 때마다 어딘지 모를 뜨거움이 느껴졌기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하정우의 ‘파이팅’ 속엔 ‘겸손함’까지 담겨있었다. 이는 왜 하정우가 충무로 ‘대세 배우’인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대목. 배우에게 ‘파이팅’은 정체되거나 안주하지 않는 힘을, ‘겸손’은 새로운 영역과 변화를 추구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정우의 배우로서 최종적인 꿈과 목표는 무엇일까.



“채플린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는 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할아버지 될 때까지 이런 인연들과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감독과 배우로서 노련해지고 깊어지는 건 덤이라고 해야 될까요. 계속 버텨나가고 어울려 나간다면 언젠가는 이 부분들을 모두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그의 꿈이 분명하다면 하정우의 여정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감독으로서도 배우로서도 그가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새로운 꿈들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명언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배우 인생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비극’은 그만큼의 성숙과 고통, 도전과 고민이란 차원에서 ‘긍정적 비극’을 의미하리라. 그의 진취적이고 확고한 신념과 함께. 하정우가 자신의 특성과 감정을 통해 앞으로 어떤 ‘느낌 있는’ 행보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이슈데일리 박은비 기자)

 

소준환기자 akaso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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