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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허스토리’ 김해숙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여전히 흥분돼요”

기사 등록 2018-06-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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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나연 기자
[이슈데일리 최하은기자] 김해숙은 ‘천직’을 가졌기에 행복하다. “배우는 연기를 해야 행복하다”라는 당연한 말이 어색해진 현재, 김해숙은 이 말을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다.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는 ‘워커 홀릭’이자 후배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된 그녀. 2018년 6월, 배우 김해숙은 관객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먹먹하게 만들 영화 ‘허스토리’로 돌아왔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웨스트 19에서는 영화 ‘허스토리’ 개봉을 앞둔 배우 김해숙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그간 한국 극장가에서 위안부 이야기는 꽤 많이 다뤄진 바 있다. 하지만 김해숙은 이번 영화는 기존의 위안부 소재 영화들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고 했다.

“기존 영화에서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이야기로만 접해왔던 걸 직접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고 두렵기도 했고요. 그런데 ‘허스토리’ 시나리오를 받고눈 ‘뭐지?’라는 생각을 하고 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이야기가 그 분들의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신선했죠. 현재 시점을 다루는 위안부영화는 없었거든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든 아픔을 딛고도 용기를 내서 아무 도움 없이 일본 사법부와 맞선다는게 대단하신 거잖아요. 정말 의미있는 작품이에요.”

김해숙은 극중 위안부 중 한 명인 배정길 여사로 분했다. 그는 비밀스러운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대사량이 많지 않았고, 눈빛과 비언어적인 것이 중요한 배역이기도 했다. 게다가 실제 인물이 소천 하셨기에 연기를 준비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을 터다.

“제가 맡은 배정길 여사는 지금 실존하시지 않아요. 극중 나오는 할머니들마다 각각의 사연이 다른데 특히 배정길 여사는 자신만의 아픔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죠. 오히려 다른 걸 참고하고 그러면 이성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작품에 몰입하는 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자료를 찾기 보다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보고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이 분의 감정이 어떨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졌던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연기할 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그 사람의 감정이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는데 이번 배역은 감정도 감이 안 잡히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나중에는 ‘내가 왜 이 역할을 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인간이자 배우 김해숙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만 보고 배정길 여사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하는데 주력했어요.”

소름 돋는 연기력으로 배역을 소화했음에도 김해숙은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을 한 나머지 그 아픈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처음에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모습을 보기가 두렵더라고요. 보통 보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영화는 답을 모르겠어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그 영화의 상황에 빠져들었던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저는 촬영하면서부터 힘들었어요. 그 분한테 다가갈수록 제가 너무 힘든거예요. 너무 많이 울어서 절제하는 게 더 힘들었고 그 과정이 쌓이면서 고통스러웠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는 꽤 괜찮아졌어요.”

김해숙의 고민과 아픔들은 외적인 부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배정길 여사는 극중 흰머리, 수척한 얼굴, 바싹 마른 입술로 재판에 임했다. 이때 흰머리 외에는 분장을 하나도 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사실 분장을 거의 안했어요. 6년간의 재판기간이기 때문에 흰머리 정도만 살짝 칠한 정도? 촬영하는 게 힘들고 그래서 팅팅 부었죠. 또 잠을 못자고 그러니까 그게 화면에서 드러났던 것 같더라고요. 어떤 날은 거울보고 깜짝 놀라고 그랬어요.(웃음)”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는 지점은 아무래도 관부재판 마지막 증언 장면으로 꼽을 수 있겠다. 김해숙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억울함과 한을 그 장면에서 한 번에 쏟아냈다. 심지어 그 장면은 컷이 나뉘지 않는 ‘원테이크’로 촬영해 관객들의 몰입을 끊지 않았다.

“(마지막 증언 장면을) 두 세 번 정도 엉엉 울고 찍었어요. 정말 저는 힘들었지만 최상의 결과물을 꺼내고 싶어서 감독님과 회의를 했죠. 촬영이 끝나고도 주체를 못하고 한 참을 울었어요. 너무 슬펐죠. 가슴이 멍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배정길 여사는 그 때 일본 정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꾹꾹 눌러 참다못해 어쩔 수 없이 흘렸겠죠. 또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은 항상 말이 없어요. 그러다가 마지막 재판에서는 배정길 여사가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김해숙은 데뷔 이후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한 가지 일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 어떤 이의 인정이 아닌 순수한 ‘연기’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자리에 서 있는 듯 했다.

“저의 연기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게 가장 큰 힘이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무엇보다도 의무감으로 일을 하면 불행한데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니까 복이 많은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현장에 있는 게 좋아요. 새로운 캐릭터가 오면 흥분이 되고요. 그래서 전 특별 출연도 많이 하잖아요. (웃음)”

연기를 이토록 사랑하는 그가 ‘허스토리’로 돌아온 것은 관객들에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기는 맡은 캐릭터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야 진정성이 묻어난다. 김해숙은 배정길 여사의 아픔과 삶에 깊이 공감하고 그것을 자신의 연기로 표현해냈기에 관객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해숙은 앞으로도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선물하지 않을까.

“(위안부 사건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역사 중에 한 부분이에요. 충격적인건 관부재판이 있었다는 사실을 연기하기 전에는 저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시더라고요. 아픔을 겪고도 그 연세에 용기를 가지고 일본과 맞서 싸운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 한 번의 일부 승소지만 그게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는거죠. 영화가 만들어져서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서 재판에 임했는지 모든 분들이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는 이번에 그저 배우로써 최선을 다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최하은기자 rinon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