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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니까]'동주' 김정석,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기사 등록 2016-03-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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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니까'는 대부분 주인공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시대에 함께 고생한 조연들과 숨겨진 공로자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겠다는 취지가 담긴 기획기사 및 인터뷰기사 등을 의미합니다.

[이슈데일리 소준환기자]영화 ‘동주(감독 이준익)’는 최근 ‘100만 돌파’를 목전에 두며 놀라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고뇌, 송몽규 선생의 투철한 의지를 다룬 ‘동주’. 관객들은 다소 지루하고 심각할 수도 있는 이 영화에 현재 뜨거운 호응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진심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동주’에는 주인공인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과 송몽규로 분한 박정민도 있지만 그 뒤에 함께 고생한 수많은 제작진과 출연진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주연들에게 쏟아지는 법. 하지만 자신의 역할과 의미 있는 작품을 위해 묵묵히 제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배우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믿는다. 극 중 송몽규의 아버지로 호연한 김정석이 그렇다. 그는 배우로서 숭고한 정신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연에만 집중하는 이 시대에 ‘작지만 큰’ 스포트라이트를 조연에게도 비추고 싶었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마지막 구절,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처럼. 김정석과 최근 논현동 한 모처에서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적 실존 인물이기에 솔직하게 부담이 좀 있었습니다. 제가 영화 속에서 맡은 배역은 송몽규의 아버지 송창의 선생이었잖아요. 배우로서도 또 배우가 아닌 분들 역시 함부로 그려내선 안 되는 인물이기에 더욱 진솔하고 진지하게 작품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심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 모든 배우들이 그랬고 관객들에게 혹시라도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임했어요.”

김정석은 진중한 어조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SBS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 그가 맡은 ‘배신의 아이콘’ 배형사와는 달리 실제로 만난 김정석은 ‘신의’가 느껴지는 면모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유승호와 남궁민이 아닌 김정석만의 ‘리멤버 - 아들의 전쟁’ 종영 소감이 궁금했다.

“중간 회차부터 들어가서 캐릭터 잡지가 쉽지 않았습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평소 친한 선후배 사이여서 어색하지 않았어요. 거의 대부분 아는 사이여서 화목하게 지냈습니다.그 덕분에 부담 없이 잘 찍은 것 같아요(웃음). 개인적으로 배신의 아이콘으로 휙휙 변해가는 극본을 볼 때마다 인물이 어느새 달라져 있어서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캐릭터상 다른 인물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고 편하게 이끌어줬습니다. 즐거운 현장이었죠.”

김정석의 미소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풍겼다. 아마도 좋은 연기란 삶의 ‘애환’에서 비롯되기에 그에겐 이미 체화된 습관일 수도 있을 터. 그런가하면 ‘동주’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생가를 재현하기 위해 극중 한옥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김정석 역시 대부분의 촬영을 그 한옥에서 진행했다. 촬영 당시 한옥과 얽힌 특별한 일화는 없었을까.

“고성에 북방식 마을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집들을 지은 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주’는 그야말로 오픈 세트에서 촬영했어요. 그러므로 분위기가 그 시대에 느낌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많이 추웠던 기억도 있어요(웃음). 송몽규가 영화 속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합격했을 때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후 문 열고 아들에게 말 하는 씬이 있어요. ‘내가 예전에 한 인물 했지’라는 대사였는데 원래는 그 대사가 아니었어요. 신연신 감독과 함께 그 대사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심경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김정석은 안양예고와 서울예대 출신이다. 이는 그가 어릴 적부터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짐작케 한다. 그는 배우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에 대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생일 선물로 극장에서 ‘메리 포핀스’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 때 줄리 앤드류스를 보고 반했습니다. 여배우임에도 빨려 들어가 웃기도 울기도 했습니다. 막연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배우란 직업이 멋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할 만큼 연기에 대한 애정이 깊다. 더불어 김정석은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주연을 맡은 연극 ‘사람을 찾습니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원 매진을 기록했을 정도. ‘사람을 찾습니다’는 그의 땀방울과 노력이 관중들에게 그대로 전달됐기에 김정석에게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연극이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작은 소극장을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극단을 갖는 것이죠. 선후배들과 연극의 본질에 대한 것들 고민과 함께 재밌는 작품들을 많이 올리고 싶어요. 요즘은 연극계가 상업적인 행보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가끔씩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연극의 본질과 정신이 많이 사라져가는 것은 아닌지 노파심이 있기 때문이죠. 연극의 진짜 정신을 잃지 않고 서로 일깨우면서 나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김정석은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대학로에서 보냈기에 ‘그 소망을 현실로 이룰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정신은 이번 ‘동주’에 까지 이어졌다. ‘동주’는 익히 알려진 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흥행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이 제작진과 출연진들의 명확한 의지와 의기투합으로 완성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동주’가 100만 이상을 넘길 것으로 봅니다. 송몽규의 재발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송몽규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됐거든요. 윤동주의 삶에 송몽규의 영향이 막대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습니다. 역사적 의식에 대해 고취가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영화를 본 지인들한테 전화가 오면 자신의 딸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얘기합니다. 4번 본 친구도 있습니다. 그만큼 감격이었나 보죠(웃음). 요즘 현실에서 ‘삼일절이 무슨 날이냐’고 물어보면 ‘쉬는 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역사가 지워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더욱 ‘동주’ 처럼 ‘귀향’처럼 우리 역사를 알게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근 ‘동주’ 무대 인사를 하면서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대 여성들이 관중석에 70%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외였지만 의미 있는 의외였다. 물론 그 역시 ‘동주’를 보고나서 한 없이 울었다. 현재까지 다섯 번을 봤고 다섯 번을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 얘기할 만큼. 이처럼 김정석은 따듯한 감성을 지닌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배우다. 그에게 배우로서의 최종적인 꿈과 목표는 무엇일까.

“저에게 ‘동주’는 따듯한 사람들과의 따듯한 만남이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배우로서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은 게 저의 꿈이에요. 스타가 되겠다는 것 보다 좋은 작품을 하면서 좋은 사람으로서 남는 게 목표입니다. 또 좋은 배우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릴적 연극을 배울 때 선배들이 ‘배우가 되기 전의 사람이 돼라’고 줄곧 말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 그 말이 와 닿지 않았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 배우가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이 서야 관객들에게도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서 그런 말을 했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딸이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딸이 제 삶의 힘일 거예요.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편안해지고 그렇습니다. 앞으로 제 배우로서의 삶도 ‘동주’처럼 흘러가길 희망합니다(웃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김정석은 배우로서의 신념과 도전정신이 명확하다. 추후 반드시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제대로 된 악역 그리고 제대로 된 코믹한 인물’일 만큼 그의 연기적 열정에는 결코 멈춤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석의 행진에는 배우로서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동주’가 지닌 강점이 ‘진심과 진실의 힘’이 맞다면 그의 강점 역시 ‘진심과 진실의 힘’이지 않을까. 폭넓은 연기적 스펙트럼과 인간적인 매력을 겸비한 김정석이 앞으로 어떤 멋진 행보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장희언 기자)

소준환기자 akasoz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