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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이제훈 "실존인물 '박열' 연기, 사명감 느꼈다"

기사 등록 2017-06-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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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유지윤기자]'박열'이란 조금 생소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로 뜨거움을 전할 이제훈이 왔다. 이미 공개된 '박열' 포스터만 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이제훈은 온 데 간 데 없다. 도발적이고, 남루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상을 안겨준다. 포스터가 주는 이미지만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그 기대감을 가지고 '박열'을 관람하면 되겠다. 실망하진 않을 것이다.

'박열'은 1923년 도쿄에서 6천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의 다섯 번째 실화영화기도 하다.

이제훈은 '박열'을 통해 거장 이준익 감독을 만나게 된 기쁨도 잠시, 시나리오를 읽은 후 우려에 젖어들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존인물을 스크린에 살려냈기에 중심을 잡아야 했다. 왜곡도 미화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여기에 129분이란 러닝타임 동안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하는 과제도 짊어졌다.

"솔직히 실존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쉽지도 않고, 일본어로 된 긴 대사를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특히 법정신이 부담이 됐어요. 법정신은 한국어로도 힘든데 말이죠. 하하. 그 부분은 한국 관객들만 이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일본인들도 '박열'을 봤을 때 이질감 없이 바라봐주길 바랐어요. 그 점에 주안점을 두고 일본어를 배워 연기했습니다."

시나리오를 통해 '박열'이란 인물을 만난 이제훈은 그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 위해 1923년으로 돌아가야 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고, 그의 삶을 논한 일본인 작가의 평전을 읽으면서 어느새 '박열'이란 인물에 푹 빠져버렸다고. 잠시나마 박열의 삶에 스며들면서 나름의 사명감도 가지게 됐다. 애정과 관심을 주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서서히 제 안에서 정리가 됐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 용맹하고 기개가 있는데 울분과 억울함을 가지고 표출해야 하는 연기를 해야 하지 않나 고민했어요. 연기를 할 때 이 사람이 스무 살 초반에 일본 제국주의 심장에서 살아가는 모습,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흉흉한 민심을 피하기 위한 만들어진 대역죄인 박열의 모습을 생각했어요. 한국인에겐 영웅, 일본인들에겐 원수인 박열이란 인물이 재판정에 서기까지 당당하게 맞섰고, 신념과 사상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저를 통해 표현되잖아요. 저 나름대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연기를 신중하게 했습니다. 박열을 통해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을 잘 표현하는 것도 의미기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연기에 주안점을 뒀네요."

이제훈에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박열' 연기 포인트에 대해 들어봤다. 영화를 보기 전 설명하는 이제훈의 '박열'을 이해한다면 영화를 한층 더 심도 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인물이 외형적으로 남루하고 거칠잖아요. 뜨거운 불덩이처럼 느껴지지만 가지고 있는 주체적인 생각들에 대한 표현, 또 잡지를 발행하고 시를 쓴 것을 보면 굉장한 인텔리에요. 그 부분이 왜곡이 되거나, 미화되거나 그러는 걸 막기 위해 노심초사했어요. 연기할 때도 기본적으로 상황이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게 돌발적으로 나오는 걸 좋아했어요. 또 제 3자 입장으로 '이렇게 표현되는 게 맞나'란 제 3자 입장으로 관찰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정말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습니다."

'박열'은 여러모로 이제훈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준 작품. 이준익 감독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스태프의 존재도 다시 한 번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혼자 잘해서가 아닌, 모두의 협연 끝에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는 이제훈이었다.

"박열이란 인물을 경험하면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도 관객들에게 박열이란 인물을 전달하고 싶었고요. 제가 헛발질을 해서 영화를 망친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매 테이크마다 집중력을 높였고요. 저 스스로 엄청난 준비를 했다고 느꼈는데 돌아보니 스태프 한 분 한 분 모두 제가 박열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거였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스태프들의 공허함이 컸어요. 스태프의 위대함 많이 느낀 작품이었죠."

앞서 언급했듯 이제훈은 많은 고민과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부담감을 환기시킬 수 있었던 존재는 바로 이준익 감독이었다. 영화계 사람들이 왜 이준익 감독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 몸소 느꼈다. 이제훈 역시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준익 감독님과는 언제든 다시 만나고 싶다"고 털어놨다.

"촬영장에 올 때마다 무게감에 짓눌려 있었어요. 제 나름대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감독님이란 존재였고요. 이준익 감독님과 만났던 스태프와 배우는 다시 만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더라고요. 박정민에게도 들었었고 '박열'을 하면서 여실히 느꼈죠. 감독님 아니었으면 매 순간 멘붕이었을 겁니다. 감독님은 고된 순간들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해맑음이 있어요. 소년 같으시죠. 스스로 가치를 드높이는 사람임은 확실합니다."

이제훈은 극중 옥중에서 시름시름 앓아가는 박열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단식을 선택했다.

"감옥에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단식신이 있는데, 그 부분은 저도 단식을 했어요. 겸험되길 바랐고, 폐결핵을 앓고 시름시름 사경을 헤매는 걸 몸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작품 하면서 처음으로 단식을 해봤네요. 단식이 간단히 웃어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 결의를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는걸 느꼈어요. 그리고 탄수화물의 위대함도 느꼈어요."

'박열'에서 이제훈에게 빼놓을 수 없었던 존재 최희서에 대한 생각도 들어봤다.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은 최희서는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 어떤 배우보다 영화 안에서 큰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제훈은 꽤 오래전부터 최희서란 배우를 눈 여겨 보고 있었다.

"'독립영화를 통해 최희서씨를 알고 있었고요. 연기를 잘하는 원석 같은 배우가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엄청 즐거운 일이겠구나 싶었어요. '동주'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그랬죠. 이번 영화를 통해 함께 연기하게 돼 기뻤어요. 제가 필모그래피가 있는 선배로서 이끌어주고 많이 챙겨줬어야 했는데 오히려 최희서란 배우에게 배운 것 같고 의지가 많이 됐어요. 그 친구가 일본어를 아주 잘하거든요. 제 일본어를 짚어주고 지도해줬어요. 영화에서만큼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은 '박열'이지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고 해도 적절 하겠다 싶으실 겁니다. 앞으로도 '최희서란 배우를 주목 하겠다'란 주관적이 생각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상적인 포스터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박열'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훈의 파격변신에 집중했다. 댄디한 이제훈이 아닌 남루한 이제훈이라니.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훈 역시도 의구심을 가졌다. 그렇다고 똑같은 모습만 보여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상상도 하지 않았을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레 궁금증과 관심을 모을 수 있었다.

"실존인물의 고증을 따라야 해서 수염을 붙였는데 테스트 촬영 때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저를 못 알아보더라고요. 감독님도 '보자' 하시고 둘러보는데 지저분한 애가 있으니까 당황하시더라고요. 저도 약간 놀랐어요. '이게 맞나' 싶었지만 저라는 사람이 지워지고 '박열이란 인물이 온전하게 투영돼 보여 질 수 있겠구나'란 기대감도 생긴 것 같아요. 그래도 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시니까 어떻게 보여질지 걱정은 있었는데 포스터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좋았어요. 포스터가 만족스럽고 나왔고, 저한테 의미 있게 오래 남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이제훈은 '박열'을 통해 관객들과 공감하고 싶은 것들을 풀어놨다. 이준익 감독이 '박열'의 메가폰을 잡은 이유와도 같다. 그저 하나의 영화로만 소비되기엔 짙은 여운이 배어있다. 독립인물의 짧은 생을 담아올 수도 있지만, 제 안에 녹여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들의 몫이다.

"지금 우리가 세상을 자유롭고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살고 있잖아요. 당시에는 개개인의 생각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세됐던 시대였는데 그 부분에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세상이 독립을 외친 위인들에 의해서인데 너무 외면하거나 모르고 살지 않았나 싶었어요. 스스로 자기 반성이 됐어요. 이 작품을 통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숙제들에 젊은 친구들이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잖아요. 저는 '박열'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란 태도와 자세가 고취됐어요.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죠."

유지윤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