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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뷰] ‘우상’ “당신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기사 등록 2019-03-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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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V아트하우스
[이슈데일리 김혜린기자]“우상은 정확한 사고를 방해하는 일종의 편견이다.”철학자 프렌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명예, 권력, 부, 사랑 심지어 종교까지 개인의 우상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 존재를 맹목적으로 좇게 만든 무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 영화는 우리가 좇는 우상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날카롭게 의심하며 파고든다.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을 설레게하는 세 배우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가 합류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차기 도지사 후보에 거론될 정도로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도의원이지만 아들이 교통사고에 연루되면서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구명회 역을 맡은 한석규는 이번에도 명연기를 보여줬다. 한석규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떠올린다.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 목소리가 구명회의 입을 통해 나올 땐 한없이 비겁하게 들린다. 구명회가 굉장히 차갑게 시작해서 점점 뜨거워지는 인물이라는 이수진 감독의 말처럼 한석규는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완벽하게 분석해내며 명배우의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의 상대 역인 설경구도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마쳤다. 탈색과 체중 감량.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의 도전은 대중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연기한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난 후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은 핏줄에 대한 우상을 가진 인물이다. 영안실에서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고 오열하는 그의 일그러진 표정과 눈빛에는 유중식의 인생이 담긴 듯 했다. 그 짧은 장면만으로도 설경구는 강한 인식을 심어주며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극 중 중식의 아들이 사고를 당한 그날, 사고 현장에 함께 있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여인 최련화 역을 맡은 천우희는 ‘한공주’를 이어 이수진 감독과 두 번째로 조우했다. 제 35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제 5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입증해보인 그는 이번 영화에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지금까지 보지 못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최련화 역에 천우희가 생각났다는 설경구의 말처럼 천우희가 아닌 최련화는 상상할 수 없었다. 최련화가 갖고 있는 간절함과 처절함을 잘 전달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뒀다는 천우희의 노력은 영화 ‘우상’에서 성공적으로 빛을 발했다.

한석규가 직접 영화에 합류하고 싶다 말할 정도로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제작한 이수진 감독. 영화 ‘한공주’로 혜성처럼 등장해 영화계를 뒤흔든 이 감독은 이번에도 파격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들에게 인생 영화를 선사할 예정이다. 우상을 좇는 사람과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우상이라는 것조차 갖지 못한 한 사람 또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나는 저들 중 누구와 가장 닮았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 때문일까. ‘우상’은 상영 144분 동안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 ‘우상’이 제 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되며 개봉 전부터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에는 섬세한 촬영, 다양한 미술적 감각, 강렬한 음악도 한 몫 했다. 각자의 우상을 좇는 인물간의 관계를 소품이나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이 감독은 정공법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정직하게 그려냈다.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동작의 변화를 담은 촬영 기법과 스크린 위를 흐르는 미스터리한 선율의 조합은 인물의 태도와 감정을 온전히 추적하기에 충분했다.

감독, 제작진, 세 배우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의 핵심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닌 뭘 믿게 하느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쉽지 않다. 소위 말하는 ‘떡밥’이 가득한 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어렵고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한 것이 바로 그게 아닐까.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시작되는 영화 ‘우상’. 144분 동안 영화는 끊임없이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오는 20일 개봉.

김혜린기자 gpfls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