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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에드가 드가와 발레리나

기사 등록 2012-01-1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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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극장의 무용 교실The Foyer of the Opera House, 1872,캔버스에 유화, 32 X 46 cm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01. 인상파 화가들 중 가장 독특한 인물

모네, 르누아르 등과 함께 인상파를 대표하는 에드가 드가는 여러모로 특이한 화가입니다. 경마장과 기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야외에서 완성한 작품이 드물어서 그런지, 인상파 다운 느낌을 주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주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더 많습니다. 여성 혐오주의자로 유명하지만 되레 무용수나 여가수 같은 여인들이 작품의 주요 소재입니다.

드가가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의 하나임에도 인상파 내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 인상파의 특징인 빛을 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빛에 매혹되어 야외로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인상파 보다는 사물의 형태를 견고히 파악하는 신고전주의 화풍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가는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 처럼 자연광을 바탕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야외에서 자연광을 받으며 작업할 수 없었기에 그는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했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습니다. 드가의 이런 신체적 결함과 성향이 숱한 발레리나 작품들을 낳은 원동력이라 할 수있습니다.

스타무용수.jpg

스타 무용수,1876~1877,모노타이프에 파스텔, 58 X 42 cm,파리, 오르세 미술관.

02. 무용수의 화가

드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용수 입니다. 그 정도로 드가는 무용수를 소재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 습니다. 미술사를 통틀어 드가 만큼 발레리나에 집착한 화가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19세기의 발레리나는 오늘날 처럼 예술가로 대접 받는 우아한 직업은 아니었고, 요즘으로 치면 쇼걸에 가까운 존재습니다.

당시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절이어서, 일 하는 여성의 지위는 더욱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호사나 재단사 같은 전문 직업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오페라 극장의 주인공 격인 여가수 조차 예술가라기 보다는 부르주아 계층의 욕구를 채워주는 존재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다리를 드러내고 춤을추던 그녀들은 오늘날처럼 우아한 예술가가 아니라 남성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턱없이 낮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드가의 작품에 나타난 어린 무용수들도 대개 전문적인 무용 교육을 받는 발레 지망생이라기 보다는 어려서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든 노동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드가의 작품들이 살롱에서 배척받고 부르주아 계층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쇼걸로 인식되던 무용수나 도시 하층민인 세탁부를 소재로 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용수나 세탁부는 모두 음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탓에 부르주아의 거실에 걸어놓기엔 매우 부적합한 작품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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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수업Ballet Class, 1881,캔버스에 유화, 81.6 X 76.5 cm,필라델리파 미술관, W.P. 윌스태치 컬렉션

03. 무대 뒷편의 무용수

드가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숱하게 그렸지만 대부분 무대 위의 화려한 발레리나가 아닌 무대 뒷 편의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안무를 선보이는 발레리나를 다룬 것은 '스타 무용수'나 '발레 장면'정도입니다.

대부분 무대 뒷편에서 힘들게 발레 수업을 받는 소녀 무용수들의 고된 일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런탓에 대부분의 작품들엔 '무용수업'이나 '무용 시험'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드가가 묘사한 발레리나들은 오늘날의 전문 무용인들처럼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예술가라기 보다는 일당 노동자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드가는 무대보다 분장실이나 연습실에 있는 무용수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고된 연습 탓인지 그녀들은 지쳐있기도 하고 때로는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연습 동작들도 그다지 즐겁거나 경쾌하지 않습니다. 드가는 이런 연습실의 나른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해 무용수들이 등을 긁거나 하품을 하고 있는 모습까지 그렸습니다.

드가의 작품에 나오는 무용수들은 각자 무용 자세만 취할 뿐 뚜렷한 개성이 없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드가의 관심은 무용수 각자의 성향이나 기질이 아닌 '움직임과 형태'에 있다는 평가가있습니다.'드가의 무용수들은 여자가 아니라 평행을 유지하는 기묘한 선'이라는 고갱의 평가가 오늘날 드가 작품의 대표적인 해석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드가는 무용수나 발레 자체가 아니라 무용수들이 펼치는 동선과 움직임에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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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수업, 1874,캔버스에 유화, 85 X 75 cm,파리, 오르세 미술관.

04. 무용 수업과 스타 무용수

무용 수업을 다룬 드가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1874년작 '무용 수업'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1881년작인 '발레 수업'과 더불어 공간 구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소녀 무용수들은 등을 긁거나 리본을 매만지는 등 저마다 개별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피아노 위에 앉아 있는 무용수에서 안무가의 지도에 따라 움직이는 무용수들까지 소녀들 각자가 전체의 일부분으로 매우 짜임새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을 이렇게게 한 공간에 효과적으로 배치한 작품도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스타 무용수'는 무용수를 다룬 드가 작품들 중에서 보기 드물게 프리마돈나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안무 동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스텔화임에도 인상파다운 거친 터치가 매력적입니다. '스타 무용수'는 유려한 동선과 고혹스런 자태로인해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의 하나 입니다. 왼 편에 살짝 보이는 후원자인 듯한 남성의 모습 때문에 아름다운 구성임에도 그 시절의 발레리나들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무용수를 소재로 한 드가의 작품들은 당대엔 편견과 이해부족으로 선정적인 것으로 오해되었고 심지어 그의 여성 혐오증까지 결부되어 거부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드가는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실내공간에 무용수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매우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박정은기자 py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