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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창용의 사극 돋보기]'징비록' 조-명-일 군주분석 3. '조선의 황제'가 된 만력제

기사 등록 2015-04-1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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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여창용 기자] 중국 명왕조의 13대 황제 만력제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폭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명왕조가 멸망하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징비록(극본 정형수, 정지연, 연출 김상휘, 김영조)'에서 명황제 만력제는 조선, 명, 일본이 치열하게 싸운 임진왜란에서 나름 비중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 역할이 조선, 명, 일본에게 긍정과 부정 양면적이었다.

'징비록'의 만력제(장태성 분)는 향락에 취한 황제로 등장한다. 애첩 및 후궁들과 술과 놀이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 병부상서 석성(이원발 분)이 외침과 반란을 보고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서도 만력제는 혼군의 대명사로 불린다. 1572년부터 1620년까지 48년을 재위하지만 그 기간 동안 만력제는 오직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았다. 황제 본연의 업무를 내팽겨치고 태업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중앙과 지방 관료들의 전횡과 부정부패는 날로 심해졌다.

만력제가 처음부터 혼군이었던 것은 아니다. 즉위 초기에는 명재상 장거정과 함께 올바른 통치를 해나갔다. 하지만 10년 동안 자신을 보필해온 장거정이 세상을 떠나면서 혼군의 길로 접어들었다. 48년 재위 기간 중 장거정과 함께한 10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을 혼군으로 산 셈이다.

자국 통치에는 관심을 갖지 않은 만력제가 열정적으로 추진한건 조선에 대한 파병이었다. 만력제는 어려운 재정 형편에도 조선에 원군을 보내는데 애썼다. 조선 왕 선조와 대신들은 원군을 보내준 만력제의 은혜에 감사했다.

자국의 재정이 파탄나고, 국방이 허술해졌음에도 조선을 돕기 위해 애쓴 만력제를 위해 조선의 유학자들은 사당을 지어 만력제의 은덕을 칭송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세워진 만동묘가 그것이다. 만력제는 중국에서도 받지 못한 제사상을 조선에서 400년 가까이 받았다.

후세 중국인들은 만력제를 '조선의 황제'라고 비웃었다. 만력제 사후 명은 24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는 명의 멸망을 부추긴 황제라는 오명과 함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에게 봉건의 잔재로 규정돼 유골마저 훼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는 하늘이 내려준 황제로 칭송을 받았다. 특히 만동묘에서 만력제에 대한 제사는 일제시대에도 계속됐다. 극단적인 성리학 주의자들 때문에 삼정승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폐단이 일어나기도 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철퇴를 맞았다.

만력제가 조선에 파병을 결정한 덕분에 임진왜란은 동북아 3국의 군대가 치열하게 싸운 난전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명나라 군대의 보급과 대우를 조선이 부담했기에 조선 백성들의 고통은 일본군에게 받은 것 못지 않았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이 몰락해가던 명나라와 거리를 두자 서인 세력이 재조지은을 저버린 패륜을 거론하며 광해군을 쫓아냈다. 광해군이 쫓겨나자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해 인조는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는 치욕을 경험했다.

혼군 만력제에 대한 충성과 몰락해가던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고집하다 더 큰 화를 경험한 조선의 사대부들을 보면 여전히 사대주의 찌들어 국민을 저버리는 위정자들을 연상케 한다.

여창용 기자 hblood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