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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50년 장인이 논하는 ‘죽음’ 그리고 ‘연기’

기사 등록 2016-09-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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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선생님’. 윤여정에게 으레 따르는 수식어다. 한 분야에서 선생님이라 일컬음은 단지 나이 많은 이에 대한 예우는 아니다. 윤여정은 만인에게 마땅히 존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윤여정은 올해로 딱 연기 인생 반세기, 그러니까 50년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 기나긴 여정 중 이번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는 가장 파격적인 작품임이 틀림없다. 윤여정의 이번 작품, 50년의 회고를 나누는 시간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이재용 감독에게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지금은 좀 진정이 됐어요.(웃음) 제 나이에는 이제 시나리오 고를 때가 아니에요. 어느 날 이재용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가 왔고, 제 나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이 들었죠. 물색없으면 성매매신은 디테일하게 안 들어가고 스케치 정도로 하겠지 생각하고 촬영했는데, 웬걸.”

70나이에 거칠 것 없는 입담이다. ‘죽여주는 여자’ 속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 역을 맡아 죽여주게 서비스를 잘 하는 여자에서 죽음에 조력하는 여자까지 연기했다.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성매매, 죽음 모두를 소화해야 했기에 아무리 연기라 하더라도 감정소모, 정신소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는 극단적인 영화들은 피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시절에는 영화가 극단적이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사회비판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했죠. 감독들은 내 취향이 촌스럽다고들 하더라고요.(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칠순에 몰라도 될 삶을 배우로서 굳이 알게 된 거죠. 매춘에 손가락질들을 하는데, 저는 촬영하는 순간들이 못 견디겠더라고요. ‘나는 이 순간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싶기도 하고. 그들도 누구네 집 소중한 딸로 태어났지만, 환경에 의해 그런 삶을 살게 된 거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도 나면서 우울해졌어요. 음식도 못 먹겠는 거 있죠. 컵라면 하나도 삼킬 수가 없어 와인을 한 잔 들이켜고 겨우 음식을 섭취했을 정도였어요.”

이전까지는 다른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말에 콧방귀를 꼈다는 윤여정. 하지만 이번 연기를 하며 그 말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생전 처음 경험한 일이었어요. 세상에 내가 모르는 일이 있더라고요.”라는 말에서 ‘죽여주는 여자’의 색깔이 이전에 없던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했다고 봐요. 죽음이라는 게 터부시 되는 거잖아요. 죽음이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인데 공포스러워 하기보다 자꾸 얘기하면서 노인문제, 빈곤문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얘기하다보면 여러분이 사는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죽임에 대해 감독과 많이 연구했어요. 첫 조력 자살 장면을 놓고 감독이 처음에는 소영이 작심하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큰 죄책감 없이 곧바로 죽이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소영이 무력함에 우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첫 테이크에서부터 눈물을 흘렸어요. 감독 스타일이 내가 연기하는 걸 몇 번이고 계속 본 후에 컷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 부분도 쉽지는 않았죠. 결국 남의 인생을 그리는 거 아니에요. 그 인생을 상상 하면서 연기로 맞춰가기 때문에 정답은 없었죠. 모든 신이 조율해가는 과정이었어요.”

영화에서는 각종 노인문제를 비롯해 성매매, 트랜스젠더, 장애 등 우리 사회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삶의 어두운 단면을 진지하면서도 담담하게 들여다본다. 윤여정은 ‘죽여주는 여자’ 이전부터도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해왔다. 그 나이에 따른 고민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나름 구체적인 노년 계획까지 했다.

“영화를 찍기 전에 어머니도 93세이시고 해서 죽음에 대한 책도 많이 봤지만, 책이 궁극적으로 가르쳐 준 건 없더라고요. 그러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이 있다는 걸 보고 85세까지의 인간이 나 윤여정이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거였어요. 얼마 전에는 친구와 스위스에서 살자고 했어요. 하지만 스위스에 있는 친구가 말하길, 몸을 못 쓰는 사람, 정신적으로 무기력한 상태가 됐을 때만 조력자살이 가능하다네요. 내가 죽은 후 시체처리를 담당할 사람도 데려가야 한다더라고요.”

윤여정은 앞으로 남은 생을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봤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50년간 한국 영화계를 함께 발전시킨 장본인이 전한 영화계의 역사는 까마득하면서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은 마냥 흥미롭다.

“그 때는 정말 막노동 같은 현장이었어요. 주먹 좀 쓰는 분들이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저도 제가 이렇게 오래 연기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50년 전에는 여자가 시집 잘 가면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했죠. 저는 어쩌다가 결혼 생활을 실패하고서 배우로 복귀하게 됐네요. 복귀하고서는 다시 작은 역부터 시작했는데, 그 때 든 생각이 ‘과거가 아무리 화려했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거였어요. 당시에는 연기를 하면서도 내가 연기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생각했어요. 60살이 되고서는 ‘나는 이제 환갑이 됐으니 돈은 없지만, 사치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 작가와 일하는 것에서의 사치’라 생각이 들었고요. 지금 그 사치를 하고 있어요. 내 시간도 생기고 사치스럽게 살게 된 것 같아요.”

여전히 커리어에 대한 집념을 고수하는 그는 현재 최고 가치로 그 어떠한 것도 아닌 ‘하고 싶은 대로의 연기’를 꼽았다. 50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맑은 샘물을 발견하기를 꿈꾸는 윤여정은 과연 장인이 아닐까.

“저희 엄마한테 ‘70 나이에 일 할 수 있는 건 영광인 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엄마는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엄마가 90세가 넘으면서 그렇게 많이 우세요. 연기가 그렇더라고요. 수를 50년을 놨으면 장인이라잖아요. 연기는 오래한다고 잘 하는 게 아니에요. 신인이 무섭게 잘 할 때가 더 무서워요. 이미 나는 굉장히 많이 오염되어 있죠. 타성에 젖어있을 수 있어요. 제 똑같은 틀에서 변신을 해봤자 많이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그 점이 힘든 것 같아요. 최대한 다른 역할을 통해 미장을 해보려 해요.”

(사진=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해선기자 chura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