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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그물’ 김기덕 감독 “내가 꺼내는 문제들, 그래야만 하는 원심력 있어”

기사 등록 2016-10-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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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혹자는 ‘김기덕이 예전만 못해졌다’고 한다. 데뷔 초 그가 제시한 작품색은 진한 핏빛이 난무했다. 인간 내면의 생채기에서 흘러나온 피는 그 잔상이 너무나 적나라하고 선명해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인간 내면을 탐구하던 김기덕 감독은 이제 인류와 남북문제를 논한다.

세계가 인정한 ‘이단아’ 김기덕 감독은 확장된 세계관에 비례해 그만큼 대중적인 접근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전할 뿐이고, 그의 작품에는 여전히 ‘독기’가 서려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22번째 장편 ‘그물’로 돌아온 김기덕 감독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역시 제 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그의 작품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제 영화 모든 영화가 초청이 됐었네요. 95년에 영화를 처음 만들었고, 우연찮게 영화제들도 그 때 시작됐죠. 지금까지의 제 22개 영화편수와 영화제 횟수가 거의 같아요. 부산영화제가 특히 해외 영화제로 진출할 수 있던 창구가 된 것 같아요. 계속 발전해오다가 지금 상황에서 위원장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괴롭더라고요.”

해외에서는 김 감독이 내놓는 매 작품에 유독 열광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우리나라 작품들이 유럽 역사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아쉬운 성적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독창적으로 어필이 된 것 같아요. 그게 해외 영화제 초청과 상으로 결과가 나온 것 같고요. 유럽을 다녀보면 현지에서 제가 누군지 알고 있고, 영화 제목과 줄거리를 말해주더라고요. 차츰차츰 필모그래피로 제 의식적 표현이 나타난 것 같아요.”

오는 6일 개봉하는 영화 '그물'을 통해 김 감독은 지난 작 ‘해안선’(2002), ‘풍산개’(투자·제작·각본, 2011), ‘붉은 가족’(제작·각본, 2012)에 이어 또 한 번 남북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물’은 배의 원동기에 그물이 걸려 어쩔 수 없이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 분)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치열한 일주일을 담은 작품.

“각자 컴퓨터 등에 다양한 폴더들이 있듯이, 저도 굳이 한 가지 카테고리에 국한되지는 않아요. 국가적인 문제도 그렇고요. 원전문제 ‘스톱’(2015)도 그렇고 이념문제 ‘일대일’(2014)까지 제게도 그런 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인간관계, 인간 내면을 얘기했죠. 안전하게 작품을 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지금 개인적 욕망을 얘기하기에는 다른 불안이 저를 휘감고 있다 생각해요. 지금은 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남북문제가 이번 작품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 이러한 현상을 가지고 더 크게 내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역사적으로 사건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만 해왔잖아요. 이야기는 2시간 정도로 보이지만, 60년의 의심을 그리고 싶었어요. 보통은 남한이 자본주의, 북한이 이데올로기적이라 생각하는데 우리가 편견을 가지는 부분의 반대 측면도 충분히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애국심에서 일어난 오류로 반대의 이야기를 그린 거고요. 남한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형성될 수 있었을 거고 북한에서는 그게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물’은 야생성 강한 김 감독과 배우 류승범의 만남이 절묘하고 흥미로운 시너지를 형성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인물의 만남 자체로도 영화를 관람하고픈 욕구는 절로 유발된다. 여기에 첫 만남을 가진 이원근, 페르소나 김영민에 대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저는 류승범 씨와의 작업에 대해 지금까지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부당거래’를 보고 ‘저런 캐릭터 좋다. 개성 있는 연기자다’라고는 생각했죠. 그러다 류승완 감독의 추천으로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사실 바쁘게 촬영에 들어가느라 저희가 서로를 파악할 시간은 없었어요. 촬영 5일 전에 와서 리딩 한 번 정도 하고 그러느라 유대감을 쌓을 기회가 적었어요. 촬영 하면서는 영화에 몰입하려 굉장히 애썼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그 감정을 뽑아내는데 충실했고요. 류승범 씨가 이번 작품으로 배우로서 고민을 힘들게 한 것 같더라고요.”

“이원근 씨는 오디션 영상을 보고 캐스팅했는데, 지원자들 중에 대사 전달이 원만했어요. 시나리오 해석력도 뛰어났고요. 이산가족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있었어요. 김영민 씨는 많은 작품을 함께 하면서 항상 안심되는 배우예요. 그런 배우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될 정도예요. 상대 배우가 대사 하나만 잘 해줘도 서로가 향상되죠. ‘일대일’에서 1인 8역을 했었는데 이틀 만에 촬영을 완성했을 정도로 순발력이 있어요.”

감독은 ‘뫼비우스’(2013)와 ‘그물’을 비교하기도 했다. ‘뫼비우스’에서 가족을 성기로 귀결 지은 감독은 ‘그물’에서 또 다른 가슴 쓰린 전개로 소규모의 가족을 이야기했다. “‘가족’은 인간이 살면서 가장 판타지로 꿈꾸는 구성이잖아요. 그걸 가장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 거예요. 국가를 믿고 동의하는 것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거라 생각하고요. 이 영화로는 한 가장이 이데올로기의 그물에 잡혀서 얼마나 갈기갈기 뜯기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강박증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작용하는지 자세히 그리고 싶었죠. 라인을 넘었을 뿐인데 다들 ‘넌 어느 편이냐’를 묻잖아요. 그건 아마 60년대의 유령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일 거예요. 이 영화를 본 후에는 모두가 철우가 될 수밖에 없을 거고. 철우가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해요.”

이전에도, 이번에도 김 감독은 결국 디스토피아를 뜯어 살핀다. ‘그물’ 역시 주인공 철우가 어이없게 남북 경계선을 넘어선 것에서 시작해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처참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제가 희망을 줬다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도 없었을 것 같아요. 비극을 넘어서야 희망이 온다고 생각해요. 비극의 다음 페이지는 희망이기 때문이죠. 모두가 세뇌된 세계에서 몸과 영혼이 다 파괴된 인간을 보여주려 했어요. 많은 분들이 제 영화가 계몽적이라고들 하더라고요. ‘빈집’ ‘섬’ ‘나쁜 남자’ ‘뫼비우스’는 대사 없이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이번에는 고백 또는 자백을 한 것 같아요.”

감독이 개인과 가족을 넘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세계관을 확장시켜 온 데는 개인사의 작용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김기덕이라는 개인의 사고 체계는 국가의 비극적인 역사로부터 형성된 탓도 있었다.

“저는 아버지를 되게 미워하고 싫어했어요. 아버지는 폭력을 많이 썼고 집안에 공포를 조장했죠. 아버지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어요. 아버지와 밥 먹기도 싫었고, 같이 있기 싫어 해병대로 도망가기도 했고요. 군대를 가고서 아버지 행동의 원인을 알았어요. 아버지는 6.25의 상흔을 우리에게 토해낸 거더라고요. 그 후에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군 생활을 했어요. 영화감독이 되고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문제가 분노로만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독재관계 안에서 남북을 보고 열강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생각한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고 그물경쟁 뿐만 아니라 냉정하게 자신을 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최후에는 우리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고요. 15세 관람가를 받아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볼 권리가 주어졌잖아요. 우리 스스로를 진단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VIP시사회 끝나고도 다들 돌덩이를 안은 것처럼 무겁다고들 하던데 답을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좋겠어요.”

김기덕 감독은 이 다음에 또 어떠한 선구안으로 메시지를 던질까. 그의 세계관이 점차 확장돼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범위 안에서도 김 감독은 한층 처절하게, 강렬하게, 잔인하게 우리 가슴을 후벼 판다. 그것이 문제를 꺼내드는 문제적 남자의 철학이다.

“내면의 세계에서 자연스런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가장 넓은 건 인간이죠. 이것도 사실 인간의 이야기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다음 영화가 궁금해요. 지금은 ‘그물’이라는 영화가 저를 둘러싸고 있는 의식인 것 같아요. 고민 많이 하죠. 제가 한국에서만 계속 찍어야 하나도 생각하고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도 봐요. 작년에는 일본에서 원전사태를 다룬 ‘스톱’을 찍었는데, 그래야만 하는 원심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물’도 마찬가지예요. 이 다음에 어떤 영화도 그럴 수 있겠죠. 그 선택은 제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불려나오지 않겠어요. 항상 찍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몰라요. 저는 영화죠. 보이는 것은 현실이잖아요. 전범문제, 남북문제 등 지금까지의 작품이 제 중요한 생각들을 다 말한 것 같아요.”

(사진=NEW 제공)

한해선기자 chura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