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슈데일리 서종민 기자[이슈데일리 안예랑기자]최근 종영한 '푸른 바다의 전설'에 등장한 악인의 마지막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권선징악'이라는 모두가 원하는 보편적인 결말이었지만 '절대 악'이라고 표현할 수 없이 굴곡진 삶을 살아왔던 이의 죽음은 보는 이들에게 먹먹한 동정심을 불러오기도 했다.

2013년 방송된 KBS2 '학교2013'에서 반항기 넘치는 고등학생 연기로 얼굴을 알렸던 배우 이지훈은 최근 의중을 알기 힘든 악역캐릭터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드라마 종영 이후 수많은 인터뷰를 소화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이지훈을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소란피다에서 만났다. 드라마가 끝난 후 살이 조금 붙었다며 환하게 웃는 첫 모습에서는 악역 허치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극에서는 주로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보여줬던 이지훈은 처음 맡은 악역에 대해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고 시원한 대답을 들려줬다.

"그저 궁금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시놉시스를 받고나서 허치현이 어떻게 이런 삶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흘러가야 되는지를 가장 많이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써주신 부분에 제 스스로 살을 덧붙이기도 했어요.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살도 좀 찌우고 1일 1팩도 했어요.(웃음)"

부잣집 아들처럼 보이려고 1일 1팩을 했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가 연기한 허치현은 굉장히 복합적인 사람이었다. 모든 이들에게 부드러운 웃음으로 호의적 태도를 보여주며 등장했지만 점차 허준재(이민호 분)의 앞에서 드러나는 그의 실체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악인의 모습이었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한 허치현의 행동을 이지훈은 "결핍"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사람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야하는데 치현이는 그런 부분에서 결핍이 많았던 친구였던 것 같아요. 타인에게 애써 잘 보이려고 하는 걸 보면서 느꼈어요. 안정적인 정서를 가지지 못하고 자랐던 친구가 새 아버지를 만나면서 믿음을 주고,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결국 알아버린 거예요. '아버지 마음에 있던 사람은 친아들이었구나. 나는 빈 껍데기였구나'라고 느꼈던 거죠. 허탈하고 무언가를 잃는다는 감정이었을 거예요. 소유욕이 강한 친구였는데 무언가를 빼앗긴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남은 엄마를 지키려고 비뚤어진 행동을 보였을 거고."

▲ 사진=이슈데일리 서종민 기자
그가 허치현의 내면적 결핍을 이해하고 연기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연기는 '푸른 바다의 전설'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허치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많은 시청자들이 악역 허치현의 죽음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특히 그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어머니 강서희(황신혜 분) 앞에서 내뱉은 '어머니가 제 어머니라는 게 너무 저주스럽습니다'라는 마지막 한 마디는 허치현의 모든 인생과 감정이 함축된 표현이었다.

"저도 슬펐다는 댓글들 많이 봤어요. 치현이의 마지막 결말과 대사 안에는 도피, 어머니에 대한 복수, 원망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제가 4회부터 19회까지 연기를 하면서 느낀 감정들이 치현이의 마지막 장면에 다 들어있으니까 그 장면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에 대한 애증,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원망과 자괴감. 행복 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결국 파멸까지 치달았잖아요. 저도 연기하면서 안타까웠어요."

보는 이들마저 절절함을 느끼게 했던 허치현의 삶과 마지막이었다. 그런 힘든 이의 삶을 연기해야 했던 이지훈도 그의 삶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까. '연기하고 끝나서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묻자 되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산뜻했다.

"제가 매소드 연기를 하지는 않아서 힘들지는 않았어요. 충분히 대본을 보고 부족하지만 치현이의 입장에서 최대한 생각을 하려고 했고요. 지금까지 연기해왔던 경계선 안에서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고, 황신혜 선배가 주시는 연기를 잘 받으면서 연기하면 충분히 잘 전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치현이를 표현하는 연기가 끝나면 바로 선배들과 밥을 먹으러 간다고 웃으며 덧붙이는 그의 대답에서 허치현의 묵직함과 다른 장난기 어린 실제 이지훈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번 드라마가 이지훈에게 남긴 것은 '신스틸러' '명품악역'이라는 극찬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같이 연기 합을 맞췄던 대선배 황신혜, 최정우를 통해 연기자가 갖춰야할 자세에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에 대한 태도를 많이 배웠어요. 저는 겪지 못한 선배의 자리에 있는 분들이잖아요. 제가 나중에 선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죠. 촬영장에서 임하는 태도 같은 거. 저보다 한참 선배 분들이신데 항상 제 연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으세요. 제가 연기할 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화면에 잡히지 않는 순간까지도 시선 맞춰주시고. 그런 부분에서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고, 연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어요."

선배의 자세를 배웠다는 이지훈도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는 연기자들에게는 선배라고 불릴만한 연차에 들어섰다. 2013년에 데뷔해 벌써 4년차 배우가 됐다. 특히 2016년은 그에게 있어서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주연과 조연,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무려 2016년 한 해에만 여섯 작품을 소화했다. '육룡이 나르샤'를 시작으로 '푸른 바다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내공이 필요한 악역 연기를 보여주기 전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연기적으로 성장했기에 더 완벽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를 쉴 틈 없이 일하게 한 원동력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건 진심이에요.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고, 일하고 싶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더 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를 보고 연락이 와서 드라마 끝나고 3일 뒤에 바로 '마녀 보감'에 들어갔어요. 그 작품이 끝나고 한 달을 쉴 수 있던 시간에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찍었어요. 거의 세달 반, 네 달 안에 세 작품을 한 것 같네요.(웃음)"

▲ 사진=이슈데일리 서종민 기자
반듯한 집안에서 반듯하게 자란 고려말 조선초 문신 '허강', 자신의 편 하나 없이 고립된 상황에서 점점 약해지는 모습이 광기로 드러난 '선조' 등 다양한 캐릭터를 그 짧은 시간 안에 어색함 없이 소화했다니 놀랍기도 했다. 단기간에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힘든 점이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없었다"고 답한다.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을 제외하고는 힘든 건 전혀 없었어요. 단지 시청자분들이 이렇게 표현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그게 제일 고민이었죠."

이지훈이 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진정성'이었다. 배우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신념을 듣는 것은 매번 색다른 재미를 줬다. 이지훈은 매소드 연기보다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토대로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분들은 캐릭터처럼 살고 그걸 토대로 많은 걸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연기라는 게 사실 정답이 없는 거잖아요. 제가 책으로 공부했던 연기는 분석을 하고, 연기를 하고, 오케이 사인을 받으면 되는 거 였어요. 연기를 할 때는 제가 캐릭터에 대해서 생각한 것과 감정에만 신경써요. 거짓되지 않게"

거짓되지 않게 연기하는 것만 생각한다는 이지훈. 그래서 한 역할에 메이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짧은 시간에도 캐릭터에 대한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예전에 연기에 관한 소설을 읽었어요. 거기에 '연기를 매번 잘할 수는 없다. 다만 연기를 할 때만큼은 진실 되게 하면 된다'고 적혀있었거든요. 그래서 연기할 때만큼은 거짓 없이 내가 느껴진 대로 하려고 항상 생각하죠. 투박하더라도 잘 하진 못해도 시간이 조금씩 지날 때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다보면 더 잘하는 날이 오겠죠.(웃음)"
▲ 사진=이슈데일리 서종민 기자
계속해서 진실된 연기를 하고 싶고, 일을 하고 싶다는 이지훈이 올 해 가장 하고 싶은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그러나 그 것도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을 때 작은 바람일 뿐 현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하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불러주시는 데 가서 열심히 하려고요. 저도 당연히 사람인지라 '나 이런 역할, 이런 장르 하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고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나를 찾아주시고, 좋게 봐주시고, 불러주시는 데 가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장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뭐든지 다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의 2017년 바람은 '소처럼 일하는 것' 이었다. 봄이 시작됐고, 더 새롭고 많은 이야기들이 시청자를 찾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지훈은 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더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다양한 작품만큼 다채로운 연기,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이지훈. 그의 바람대로 이지훈이 2017년 그리고 앞으로 계속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 더 소처럼 일하고 싶어요. 2016년보다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연기를 열심히 하다보면 더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많은 분들에게 칭찬도 받고 더 큰 사랑을 받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네요."

 

안예랑기자 yrang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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