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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性 포함한 사랑과 죽음, 인류의 영원한 주제”

기사 등록 2016-10-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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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이번에 그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노인 문제’다. 6일 개봉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에서는 노인 성매매부터 시작해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며 죽음까지 화두를 던진다.

‘정사’(1998)부터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다세포 소녀’(2006)로 성(性)의 터부시되는 문제를 과감하게 꺼내들더니 ‘여배우들’(2009),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2012)로는 영화 촬영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큐멘터리 장르로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두근두근 내 인생’(2014)부터 ‘죽여주는 여자’까지 현재는 사회적 약자의 사연에 집중하고 있다. 빛보다는 그늘을 비추는 감독 이재용과의 인터뷰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이재용 감독과의 일문일답.

- 영화 제목 ‘죽여주는 여자’의 중의적인 제목이 인상적이다.

“윤여정 선생님에게 시나리오 설명을 하다가 ‘진짜로 죽여준다’는 말이 나왔어요. ‘죽여주는 여자’는 제목이 너무 무겁지도 않고 금방 와 닿아서 그렇게 가제로 출발한 거죠. 몇몇 분들은 좋다고도 하고, 코미디를 떠올렸다가 이야기와 매칭이 안 된다고도 했어요. 윤여정 씨는 친구 분들에게 제목을 알려줬더니 ‘그 따위 제목을 지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더라고요.(웃음) 그러다 별 수정 없이 바로 그 제목으로 정했죠. 외국에는 ‘The Bacchus Lady’라고 소개했어요.”

- 노인 성매매 문제가 참 낯설다. 특별히 꺼내든 이유가 있나?

“출발은 노인성매매에 관한 르포 기사들을 접하면서부터였어요. 이전부터 나이 들어감과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었거든요. 7년 전에 쓴 시나리오도 그런 이야기였고요. 두 이야기가 합쳐지면 강렬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했어요. 결국 방점은 뒤에 있죠. 노화와 죽음이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도 만들잖아요. 소영(윤여정 분)이 노인들의 남성성을 찾아주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죽음을 도와주게 되는 이야기예요. 100세 시대가 과연 우리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로 다가오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만큼이나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도 이야기할 때라 생각했어요. 꺼려지지만 냉정하게 말이죠.”

- 소영 역이 연기하기 까다로울 수 있을 텐데 윤여정 씨가 잘 소화한 것 같다

“맨 처음부터 윤여정 씨를 소영으로 생각했어요. 그 역시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이면서 본인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윤여정 씨가 많은 배우들로부터 ‘닮고 싶은 여배우’로 거론되는데, 대중이 생각하는 그녀의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애초부터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고 그 분을 어떻게 시나리오 안으로 끌어들일까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실제 인물들은 편안한 캐주얼, 혹은 아웃도어 차림으로 활동한다더라고요. 소영은 그녀의 화려했던 70년대 시절을 잊지 못하는 양공주 캐릭터로 생각하고 ‘나는 좀 달라’라는 식으로 표현했어요. 욕도 미국 욕을 하잖아요. 남들 시선에서는 가장 밑바닥에서 사는 것처럼 보여도 알량한 자존심이 있는 거죠.”

- 영화에는 각종 사회 문제가 제기되지만 곳곳에 인간적인 유머가 녹아 있기도 하다

“저는 완전히 무거운 영화보다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삶의 아이러니를 지니고 있고, 작은 온기가 있으면서 냉소적인 것들이 섞인 걸 좋아해요. 어떤 레퍼런스를 가지고 극단으로만 몰아갔으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 스타일대로 몰고 가더라고요. 사실 영화를 못 만들겠다고 다 집어던질 뻔한 순간도 있었어요. 2개월 만에 이 영화를 준비하고 일주일 만에 베를린 영화제에 보내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있던 거죠. 죽음 소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도 싶었고요.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공론화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촬영하고 싶었어요. 우리나라가 가장 빨리 고령화되는 나라이기도 하고. 대비가 안 되어있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라 생각했어요.”

- 성매매를 묘사한 과정들이 꽤나 디테일 했는데

“요즘 시대에 성적인 주제를 접할 기회가 많잖아요. 심지어 프랑스 영화에서는 성기가 그냥 노출되기도 하고요. 윤여정 씨가 나름 소화할 만큼의 정도를 표현한 것이 그런 장면들로 나왔어요. 사실 본인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연기로 접하고서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그 장면들이 필수 불가결했다고 생각했어요.”

- 소영이 조력자살을 하며 또 다른 의미로 ‘죽여주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서비스가 죽여주는 여자에서 실제로 죽음을 도와주는 여자로 변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사례를 하고 싶던 욕심이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써놓고 실제로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건지 고민하기는 했죠. 중압감이 굉장히 컸어요. 어쩌면 사회적 책임이 따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요. 윤여정 씨가 많은 도움을 줬죠. 양미숙에서 윤소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젖도 안 뗀 아기를 버리고 살다가 노인들의 근근이 버텨내는 삶을 사는 입장을 생각하며 그들이 가진 고통과 연민에 잘 이입한 것 같아요. 윤여정 씨는 ‘나라도 그런 입장이면 죽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들의 처참한 심정을 잘 이해한 것 같아요.”

- 조력자살의 예가 사실적으로 표현됐다는 찬사가 있다

“첫 번째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조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안면을 틀 여력이 없었어요. 저는 제 직관을 믿는 편이거든요. 내가 만든 소영 안에 각자의 다른 사연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어요. 연쇄적으로 죽음에 연루되는 분들도 제 감정을 이입해 본 거죠. 첫 번째 할아버지처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치매에 걸렸을 때 스스로를 모르는 것이 주는 공포감이 있었을 거예요. 온 가족을 잃고 쓸쓸히 빈 방에서 죽어가기에는 비참하게 느껴져서 곁에만 있어주기를 원하는 절박함을 나열하다보니 그런 인물들을 그리게 됐어요. 그런 사례가 공교롭게도 실제 노인들의 자살율에 포함된다더라고요.”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되기도 한 ‘죽여주는 여자’가 ‘제20회 몬트리올판타지아영화제’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 ‘제17회 아시아티카영화제’ 작품상 등 해외영화제에서 일찍이 수상하기도 했다

“외국 영화제에서는 작은 디테일까지 제 의도를 다 알아봐주더라고요. 사소한 부분에서도 잘 웃어주고, 개인적으로 블랙 유머를 좋아하는데 그걸 모두 캐치해주더라고요. 윤여정 씨의 용기에도 칭찬들을 해주셨고요. 한국에서는 좀 더 진지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 입봉부터 과감한 시도를 꾀하는 감독님의 도전이 흥미롭다

“첫 영화로 ‘정사’를 다루기 전까지는 멜로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막상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던 거 있죠. 심리적인 줄다리기가 특히 재미있었어요. 사실 영원히 기억되는 영화들은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인 것 같아요. 이야기에 금기가 껴 있을 때 긴장감이 생기는 것 같아서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죠. 성을 포함한 사랑과 죽음, 두 이야기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것 같아요. 고대부터 사랑이야기는 존재해왔고, 세상 모든 것들은 결국 죽음을 향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종교 등이 그런 것 중 하나겠죠. ‘여배우들’, ‘뒷담화’는 안 해본 새로운 형식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아직 새로운 구상이 많이 있죠.”

(사진=이슈데일리 민소희 기자)

한해선기자 churabbit@